난징대학살 주범의 믿을 수 없는 미감이 만든, 도쿄도 정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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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전유신의 벨 에포크도쿄도 정원미술관은 벨 에포크 시기 프랑스와 일본의 친밀한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도쿄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1933년에 지어진 본관과 1960년대에 신축되어 미술관으로 사용되는 별관, 그리고 유럽식과 일본식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관은 일본의 황족이었던 아사카노미야 가문에서 사용하던 대저택이었는데, 내부를 온통 아르데코 스타일로 디자인한 서양식 건축물이다. 저택을 건설하던 시기에 프랑스의 실내 장식가, 공예가, 조각가를 일본으로 불러들여 작업을 맡긴 것은 아사카노미야 가문의 재력과 위세를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일본 아르데코 미술의 정수
'도쿄도 정원미술관'의 아름다움과 그 이면
일본 아사카노미아 가문의 야스히코 왕,
1925년 파리 '현대 장식 및 산업 미술 국제 박람회'서
에밀 자크 루만 '컬렉터의 호텔'에 감명 받아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기계를 통한 대량 생산이 일반화되었고, 여기에 맞추어 곡선보다는 직선적인 요소가, 유기적인 형태보다는 기하학적인 조형이 장식품 디자인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르데코는 산업화 시대에 적합한 양식이었던 셈이다.
이 박람회를 관람한 일본인 관람객 중에는 아사카노미아 가문의 야스히코 왕도 있었다. 그는 일본의 육군 소위로 임관해 복무하다가 1922년 프랑스의 특수군사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얼마 후 자동차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된 그를 간호하기 위해 부인도 프랑스로 오게 된다. 두 사람은 1925년까지 파리에 함께 머물면서, 그해에 열린 ‘현대 장식 및 산업 미술 국제 박람회’를 관람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 박람회에는 수많은 볼거리가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에밀 자크 루만의 ‘컬렉터의 호텔’과 같은 파빌리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컬렉터의 호텔’은 아르데코 스타일로 집을 장식하면 어떤 모습일지를 시각화해 보여준 모델 하우스나 다를 바 없었다. 1925년의 장식 미술 박람회를 관람한 야스히코 왕 부부는 아르데코 스타일에 매혹되었고, 그해에 귀국해 ‘컬렉터의 호텔’처럼 실내를 장식한 대저택을 건축할 결심을 하게 된다.
1929년 저택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건물의 설계는 황실 건축물을 담당하던 궁내성 소속의 건축가들이 맡았다. 실내 디자인은 프랑스인 앙리 라팽의 책임하에 이루어졌다. 공예가인 르네 랄리크와 막스 앵그랑이 현관의 유리문과 에칭 글라스로 장식된 대형 미닫이문을 만들었다. 철 공예가 레이몽 쉬브는 문과 가구의 철제 장식을 맡았다. 조각가 알렉상드르 블랑쇼는 거실용 대리석 부조 조각을 제작했다.
야스히코 왕은 1937년 일본군의 난징 공략을 지휘했고, “모든 포로를 사살하라”는 그의 명령은 그해에 발생한 난징대학살의 명분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전 이후 전쟁 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황족은 전범재판에서 불기소한다는 방침에 따라 석방될 수 있었다. 그의 저택은 이후 총리 관저와 영빈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1983년에 도쿄도 정원미술관으로 명칭을 바꿔 개관했다.
아사카노미야 저택은 아르데코라는 현대적인 양식을 파격적으로 수용할 정도의 감식안을 지녔던 건축주 야스히코 왕에 의해 탄생했다. 동일인이 난징대학살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이 저택이 지닌 미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극적인 반전이라 할 수 있다. 도쿄도 정원미술관은 프랑스와 일본, 아르데코와 난징대학살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 아름답고도 기이한 서사의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