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옛집 대들보로 만든 탁자에서 茶 마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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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19
공예 완상목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재다. 목공예가들은 어디서 소재를 구할까? 제재소에서 신재(新材)를 사는 경우도 있지만, 근방에 쓰러져 있는 나무가 있으면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사유지도 아닌 남의 산에서 나무를 무단 벌채하는 것도, 사유지라 하더라도 관청으로부터 허가받지 않고 나무를 벌목하는 것도 산지관리법 위반이다. 조경업자나 목재소에서 나무를 받기도 한다. 이 경우 다양한 산지, 수종의 나무를 구경할 수 있다. 나무는 태어난 지역에 따라 형태, 색, 무늬, 강도가 다르다. 성질에 따라 무엇이 될 수 있는 한계와 가능성이 명확히 있다. 목수가 멋진 가공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수작(秀作)의 필요충분조건이지만, 목수가 어떤 나무를 만나는지가 목작업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목수들은 평생 필연을 기다리듯, 필재를 만나길 기대한다.
목재는 형태·색·무늬 다 달라
재료 희소성이 목공예 매력
좋은 목재를 만나는 건 '인연'
오랜 한옥·폐교서 나온 고재
풍파 견뎌낸 질감 개성 뚜렷
지리산 목수 청오 김용회는
고재 되살려 다탁·목다구 제작
나무가 목재로, 다시 목다구로…
찻자리는 목 축이는 시간 아닌
영속의 증표 확인하는 순간
목공예가들의 소재 욕심은 공예가 중에서도 남다르다. 나무는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하다. 재료의 희소성이 목공예의 매력이고 작업의 근간이다. 이 때문에 목수들은 늘 소재를 고르고 작업할 때 신중하다. 판단을 잘못하거나 실수하면 소재를 다시 구할 수도, 시도도 할 수 없다. 나의 부족함으로 다시 없을 소재(天材)의 가능성과 영속성을 단절시켜 결국 쓸모없게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아쉽고 미안한 일인가!
요즘에는 오랜 폐교나 한옥에서 나온 고재를 사용해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 경상남도 지리산 악양에서 목수 청오 김용회는 지리산 근처 오래된 한옥이나 폐교, 제주도 전통가옥을 해체하며 나온 고재를 사용한다. 그것으로 다탁, 목다구(木茶具), 그릇 등을 만든다.
그는 나무의 잘린 단면과 상태를 보고 고재가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가능성과 한계를 판단한다. 어느 부분을 가장 잘 보이게 할 것인지 생각하고, 썩은 것, 갈라진 것, 옹이, 구멍 등을 살리거나 피해 무엇을 만들 것인지 상상력을 발휘한다.
늙고 속이 텅 빈 나무, 벌레가 먹은 나무 안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처음에는 숲 혹은 마을 어귀에 누군가 심어 높은 느티나무, 은행나무 묘목이었을 거다. 묘목에서 나무로 자라며 굳건히 풍상을 견디고 서서 무엇을 지켜보고 귀담아들었을까? 여름엔 사람들의 피서처가 되었다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가, 간절한 소망을 비는 이들에게는 신(神)도 되었을 것이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후일 업에 따라 다른 형태, 다른 방식으로 영속한다. 나무에서 목재로 다시 고재로, 고재에서 목다구로 변한 사물을 쓰다듬고 바라본다. 여러 번 찻잎을 덖어 만든 차를 우린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한다. 부산한 마음을 가라앉히기에도 제격이다. 그러나 찻자리는 단순히 목을 축이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삶, 영속의 증표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오랜 고재로 만든 다탁, 차도구를 손으로 쓸고 개성을 느끼면서, 동시에 눈과 입으로 차의 색, 향미를 음미하다 찬찬히 보면 조금씩 나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해와 조화의 심미안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홍지수 공예평론가·미술학박사·CraftMIX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