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 가을이 왔다. 과거 중국에서 천고마비는 공포심과 우려를 드러내는 사자성어였다고 한다. 가을이면 말이 살찌고 수확으로 물자가 풍부해져서 흉노족이 내려와 약탈을 자행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천고마비가 풍요로움을 비유하고 가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인 건 동일하다. 풍수지리에서도 말은 성공이나 재물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여겨지니 한 해 동안 키운 농작물을 수확하는 가을에 썩 잘 어울리는 동물이라 할 수 있다.
발레에서도 말은 중요한 동물이다. 발레의 동작 중에는 동물의 움직임을 표현한 동작들이 몇 가지 있는데, <백조의 호수>나 <빈사의 백조>에 등장하는 백조의 움직임, 고양이의 걸음걸이를 본뜬 ‘파드샤(pas de chat)’ 동작이 대표적이다. 말의 움직임도 발레의 언어로 탄생했다. 그중 하나가 ‘파드슈발(pas de cheval)’이다.
작품 안에서 파드슈발이 쓰일 때는 말의 움직임이 갖는 활기와 경쾌함을 드러낸다. <지젤>의 1막 알브레히트와 지젤의 파드되에서이다. 두 사람은 데이지꽃으로 사랑을 점치고 난 후에 함께 팔짱을 끼고 행복한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는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이때 파드슈발을 활용한 동작을 볼 수 있다. 보통 파드슈발은 한 다리를 바닥에 붙인 상태에서 이뤄지지만, 이 장면에서는 몸을 공중으로 살짝 띄워서 파드슈발을 더 경쾌하고 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제 곧 들이닥칠 불행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연인은 이 장면에서 파드슈발을 통해 사랑의 설렘과 기쁨을 폭발시킨다. 이 장면이 경쾌했던 만큼 그 뒤에 지젤이 연인의 배신으로 심장병이 도져서 죽는 장면은 더 처연하게 다가온다.
마네주는 작품 안에서 주로 남성 무용수들이 선보이는 동작이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테크닉이기 때문에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낼 때 많이 선보이고, 솔로 무대의 대미를 장식하는 동작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잠자는 숲속의 미녀> 3막 결혼식 그랑 파드되를 들 수 있다. 결혼식에서 선보이는 마네주는 신랑의 기쁜 마음을 극명하게 표출하는 테크닉이다. 이때의 마네주 안에는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게 돼서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