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필하모닉과 함께 역사에 남을 만한 브람스와 멘델스존을 들려준 바 있는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인류 최초의 97세라는 초고령 현역 지휘자로서 이제는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로 세월이 야속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본유의 템포를 견지하며 생생한 표현력과 젊은 생명력으로 가득한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에 음악적 감동을 넘어서는 인간 정신 승리의 숭고함을 체험하지 않을 수 없다. 육체적 한계를 넘어선 그는 잘츠부르크 이후 9월에 라이프치히와 스톡홀름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일본 스케줄 중간인 10월 21일과 22일에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다시 도쿄로 돌아와 정기연주회를 마무리한 뒤 11월에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및 말러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젊은 지휘자의 캐리어를 위협할 만하다.
10월 10일과 11일 공연 가운데 산토리 홀에서 열린 첫 공연을 참관했는데 사실상 블롬슈테트와 NHK의 2024년 10월 프로젝트의 첫 공연. 입장부터 브라보와 함께 격렬한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그는 악장과 함께 제법 힘 있는 발걸음으로 등장하여 컨디션이 많이 좋아 보인 만큼 의자에 앉은 뒤 양손을 펼치자마자 오케스트라는 첫 호흡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투오넬라의 백조’. 저역 현악의 솟아오르는 에너지와 바이올린 파트의 서늘한 낭만성이 강조되며 여러 목관의 자욱한 향기까지 가세, 그 어떤 공연에서 체험하기 힘든 순수한 음향의 아름다움으로 전설 속의 한 장면을 정묘하게 연출해냈다. 이후 악단의 클라리넷 수석인 케이 이토와 함께 한 닐센의 클라리넷 협주곡에서는 이전 작품보다 악단 인원이 줄어든 만큼 더욱 슬림하면서도 정확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전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