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K-POP으로 모든 경계를 무너뜨린 화제의 시상식, 2024 M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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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시상식!2024년의 한국 사회, 대중음악계에는 이례적으로 두 개의 강력한 블랙홀이 떴다. 바로 비상계엄과 탄핵, 하이브와 뉴진스 관련 이슈다. 모든 걸 빨아들일 듯 수많은 뉴스를 양산하고 또 다채로운 소식을 그늘지게 한 양대 사태의 사이에서 작지만 크고, 넘어갔지만 톺아볼 만한 사건들은 꽤 있었다. 그중 하나, 2024 MAMA LA 사건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한 입장에서 풀어보려 한다.
'2024 MAMA AWARDS' 현장을 가다
DOLBY THEATRE, US
케이팝 시상식 '최초' 미국 진출
아르 데코 양식의 돌기둥 12개에 숫자의 연쇄가 적혀 있었다. 이것들은 내게 마치 고대의 기념비처럼 다가왔다.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나 이집트의 기자에서 마주하는 문명의 모놀리스(monolith)처럼 압도적으로 시야를 침공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저 숫자 하나하나의 아래에 새겨져 있는 각각 다음과 같은 문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Gone with the Wind(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Ben-Hur(벤허)… The Sound of Music(사운드 오브 뮤직)… Parasite(기생충)…’
역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 모두 기록된 이곳은 돌비 시어터의 입구다. 세계 영상과 음악 산업의 메카, 할리우드의 중심에 위치한 유서 깊은 극장. 이곳은 매년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2020년 초, 한국 영화 최초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기생충’도 바로 이 안에서 트로피를 추켜올렸다.
11월 21일(현지 시각) 오후 이곳에는 이미 라이즈, 투어스, 아일릿 등 케이팝 그룹을 응원하는 문구를 한글로 적은 현지 다인종, 다문화의 팬이 운집해 있었다. 이날 저녁 열릴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에 몇 시간 앞서 대기 줄을 선 것이다.
한국과 아시아의 대표적 대중음악 시상식인 MAMA는 이날 새 역사를 쓸 참이었다. ‘한국의 메이저 시상식 최초의 미국 현지 개최’. 한국 가요 시상식을 미국에 날아가서 한다고? 어쩌면 무모하게도 보이는 이 도전은 몇 년 전부터 예비됐다.
거의 정확히 3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2021년 11월, 나는 세계적인 라디오 DJ 제인 로(Zane Lowe)를 인터뷰했다. 뉴질랜드 출신의 로는 21세기 대표 라디오 DJ다. 20세기로 치면 미국의 하워드 스턴이나 딕 클라크, 영국의 존 필에 비견할 수 있다. 2003년부터 12년간 영국 BBC 라디오 1채널의 황금시간대 진행자였다. 2015년부터는 애플뮤직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애플뮤직 라디오의 대표 DJ로 활약 중이다.
그 순간을 그는 “매직!”으로 회고한다. 그리고 이렇게 부연했다. “번역조차 필요 없이 태평양을 건너버린 이 음악(케이팝)이 곧 모든 이의 가슴에 닿으리라고 그때 직감했죠.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그저 마음을 사로잡는 것. 그런 걸 우린 마법이라 부르지 않나요?”
그는 당시 MAMA의 미래에 대해서 “한국의 음악은 이미 국가와 대륙의 경계를 넘었다. 영화, 패션과 함께 세계인의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미국에 온다고 해도 홈런을 치리라 확신한다”라고도 말했다.
꼭 3년 만에 그 말은 거의 현실이 됐고, 나는 그 역사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이날 난 돌비 시어터 건너편에 있는 ‘멜스 드라이브 인 할리우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1980, 90년대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가 할리우드의 레코드 플랜트나 오션 웨이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다 허기가 지면 새벽에 앙투라지(entourage)와 기습적으로 들러 버거를 들어 올렸다는 곳이다.
보도로 나서자, 할리우드 워크 오브 페임, 즉 별의 거리가 나를 반겼다. 월트 디즈니부터 프랭크 시내트라, 존 레넌까지 다양한 스타의 이름 위로 시민들이 무심히 지나갔다. 땅을 보고 걷다 문득 고개를 드니 수많은 레코드판을 쌓아 올린 듯 신기한 모양의 캐피톨 음반사 사옥, 그리고 저 멀리 할리우드 사인이 선뜻하게 보인다.
배우 박보검의 진행으로 시작한 MAMA는 첫 시상부터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87세의 원로 배우 더스틴 호프먼이 남자 신인상을 건네러 나온 것이다. 앞서 저 돌기둥에 새겨 있던 1979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1988년 ‘레인 맨’의 주연으로 오스카상을 들어 올렸던 인물이다. 이젠 고전이 된 ‘빠삐용’부터 ‘졸업’ ‘투씨’, 그리고 쿵푸팬더의 마스터 시푸 목소리 연기까지. 할리우드와 빌보드가 우리네 학생들의 ‘교양필수’이던 시절, 그야말로 달달 외던 필모그래피의 주인공 아닌가. 그가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의 투어스에게 신인상 트로피를 쥐여 주는 장면부터 이날 저녁의 현실감은 할리우드 사인이 자리한 산타 모니카 산맥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1990년대 초중반 당시만 해도 한국 팝의 교과서는 미국 팝이었다. 젊은 파격을 원했던 서태지에게 특히 그 주요 텍스트 중 하나는 미국 힙합. ‘Come Back Home’은 갱스터 랩에서 양분을 빨아들였다. 다름 아닌 이곳 돌비 시어터를 감싼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생겨난 장르다. 저 ‘Come Back Home’의 반음계 베이스 진행이 나오는 순간, 난 그래서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전류 비슷한 걸 느낀 것이다. ‘30년 전, 서태지에게 영향을 준 LA는 그 생각지도 못한 나비효과의 씨앗을 자신도 모른 채 이역만리 동양인이 들고 온 결실로 돌려받고 있다….’
박진영과 앤더슨 팩이 꾸민 마지막 무대도 다층적 의미망을 이 고전적 극장 위로 펼쳐놨다. 위트 있는 ‘밀양 박씨 콜라보’라는 부제 때문만은 아니다. 앤더슨 팩이 누구인가. 로제와 함께 근래 세상을 뒤집어 놓은 브루노 마스, 그와 함께 듀오 실크 소닉을 결성해 그래미 다관왕을 목에 건 다재다능한 싱어송라이터이자 랩도 보컬도 악기 연주도 자유자재인 멀티인스트루멘털리스트이다. 그의 한국인 할머니는 6·25에 참전한 미군과 결혼해 훗날 앤더슨 팩의 어머니가 될 딸을 낳았다. 앤더슨 팩의 ‘팩’은 그래서 정확히 ‘박’이다.
박진영은 또 누구인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9년, 원더걸스 멤버들과 태평양을 건너와 맨땅에 헤딩하며 미국 프로모션을 진행해 결국 ‘Tell Me’를 빌보드 핫100의 76위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원더걸스 원정 이후 15년. 2024년 케이팝 신인들을 몰고 함께 온 올해 박진영의 MAMA 무대는 그래서 그에게도, 한국 음악업계 종사자들에게도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예뻤다’ ‘허니’ 등 박진영의 히트곡들이 품은 20세기 미국풍의 솔(soul)과 그루브(groove)가 앤더슨 팩의 출렁이는 드러밍을 만날 때, 케이팝과 팝의 경계는 어느새 흐물흐물해지고 있었다.
그제야 문득 올해 MAMA의 슬로건이 떠올랐다. ‘BIG BLUR : What is Real?’
2020년대 들어 확장현실(XR) 기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한 MAMA는 시상식을 넘어 케이팝 최고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쇼로 자리를 굳혔다. 이제 또 다른 경계가 무너진다. 또 다른 국경이 흐물흐물해진다.
‘2024, 2025, 2026, 2027… 2070, 2071’
돌비 시어터를 나오며 돌기둥에 마저 새겨진 또 다른 숫자들의 연쇄를 보았다. 미래에 새겨질 그 아래 수상작 제목은 물론 아직, 빈칸으로 남겨져 있었다. 할리우드 워크 오브 페임을 걸으며 봤던, 내용이 비어 있는 별들도 떠올랐다. 앞으로 이 거리에 어떤 K가 울려 퍼질까. 어떤 K가 새겨질까. ‘시대와 함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양태는 바뀐다. 스타의 정의와 얼굴도 바뀌어 간다.’ 이런 상념과 만감 속에 할리우드의 밤은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