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건축물로 美의 본질과 투쟁한 모더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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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브루탈리스트브루탈리즘. 가공하지 않은 콘크리트라는 뜻의 프랑스어 ‘béton brut’에서 유래된 모더니즘 건축 사조다. 콘크리트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 어떤 장식적 디자인도 허용하지 않는 기능주의적 요소를 극대화한 건축 양식이다. 브래디 코베 감독은 이 단어의 의미를 전면에 내걸고 역사극 외형을 한 가상의 이야기 ‘브루탈리스트’를 창조해냈다. 코베 감독은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이 영화로 감독상(은사자상)을 받았다.
파시즘 피해 미국으로 온 주인공
천재 건축가 면모 되찾지만
자본의 힘에 창의력 잠식 당해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우연한 계기에 대자본가 밴 뷰런(가이 피어스 분)의 도움으로 아내와 조카를 미국으로 불러들인다. 그토록 그리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듯싶었으나 자본의 강력한 힘은 토스의 창의력을 소모시키며 점점 잠식해 간다.
왜 건축을 선택했냐는 뷰런의 질문에 토스는 ‘정육면체를 설명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것을 만드는 것에 있다’고 답한다. 그에게 시대적 이념과 사상은 매 순간 역사적 운명을 비극으로 반복하는 것들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격동의 시대가 흘러감에도 변함없이 우뚝 서 있는 건축물의 힘이다. 그에게 건축은 시대를 관통하는 영원성을 담보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이다.
경시당하던 건축 재료인 콘크리트를 전면에 내세운 브루탈리즘의 야수성은 주인공 캐릭터 그 자체를 대변한다. 극단적인 단순함을 과시하는 브루탈리즘의 미학은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입장과 매 순간 대립해 왔다.
흥미롭게도 ‘브루탈리스트’는 건축물을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담아내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위엄을 자랑하는 건축물의 외형에서 찾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의 아이디어와 생각을 지켜가며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돼 가는 과정에서 그 본질을 탐구한다.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 ‘브루탈리스트’에도 방황하고 갈등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예술가의 면모가 등장한다. 하지만 코베 감독은 그런 예술가들의 갈등을 단순한 창작의 고통과 연결 짓지 않는다. 그 고통의 원인을 자본주의의 세속성에서 찾고 자본이 예술을 어떻게 훼손시키는지 해부하듯 들여다본다. 예술이 부흥하기 위해선 자본이 동반돼야 하는 딜레마 속에서 예술의 가치를 지켜나가야 하는 예술가들의 고뇌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와 시대적 문제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
어쩌면 그가 건축하려 한 건물은 절대 이 세상에서 구현될 수 없는 이데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시대에 물성을 지닌 필름을 선택하고, 아이맥스 카메라가 스펙터클의 차원을 새롭게 펼쳐 놓는 시대에 70㎜ 필름 통을 운반하며 영화를 상영한 감독의 의지는 불가능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또 하나의 몸짓인지도 모른다. 그런 몸짓이 하나둘 모여 현실의 지루함을 변혁해 나간다는 사실, 여러 시대 속에서 오해받아 온 모더니스트들의 고집스러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동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