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의 세계에서 "오라! 종말이여" …멜랑콜리아의 장엄한 파멸
입력
수정
[arte]김은정의 그 영화 다시 볼 이유우울이 세상을 파멸시킨다. 인류는 절멸하고 지구는 사라진다. 덴마크의 거장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 감독의 영화 <멜랑콜리아>(Melancholia, 2012)의 마지막 장면이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 일상이 완전히 망가지는 주인공을 보여주던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멜랑콜리아’라고 명명된 거대한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장면으로, 그 어떤 생존의 가능성도 없는 세계의 극단적 파괴로 끝맺는다. 아름답고 장엄한 파멸의 영상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십여 년이 지나 다시 소환된 이 우울과 종말의 영화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영화
행성이 지구와 부딪혀
아름답고 장엄한 파멸을 그려내
우울에서 비롯된 지구의 종말
환멸의 세계를 그려내다
<멜랑콜리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몽환적인 쇼트들로 영화 전체를 압축한 8분가량의 프롤로그가 끝나면 1부와 2부로 본격적인 서사가 펼쳐진다. 1부는 1박 2일 동안 벌어지는 주인공 ‘저스틴’의 성대한 결혼식과 피로연 이야기다. 거대한 저택에서의 화려한 결혼식인 만큼 으레 행복한 분위기를 상상하겠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무기력과 우울함에 저스틴은 자신의 결혼식을 망친다.
2부는 불안을 느끼는 ‘클레어’의 이야기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클레어는 미지의 행성 멜랑콜리아가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는 소식에 불안해진다. 과학자들은 멜랑콜리아의 궤도가 지구를 비껴간다고 예측하지만, 매일 더 커지는 푸른 행성을 보며 클레어의 불안은 점점 심해진다.
되뇌어보면 <멜랑콜리아> 속 사회는 우울과 불안을 야기하는 환멸의 세계다. 저스틴의 결혼식만 하더라도 그렇다. 결혼은 낭만적 사랑의 이상향처럼 포장되어 신부에게 행복과 웃음만을 강요한다. 돈으로 치장된 행사는 형식적으로 참석한 하객들, 결혼제도를 불신하는 어머니와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아버지, 결혼식 중에도 신부에게 맡긴 일을 독촉하는 직장 상사, 주어진 업무만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집사들로 채워진다. 그 속에서 저스틴은 의미를 잃고 무기력과 피로, 우울에 빠진다. 그러니까 저스틴의 우울은 그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환멸스러운 세계로 인한 것이다.
이성과 과학도 마찬가지다. 저 광활한 우주의 법칙을 전부 아는 양 확신하는 과학과 그것을 신뢰하는 가족들을 보며 클레어는 불안을 느낀다. 클레어 부부는 멜랑콜리아 행성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진 날에야 그간의 온갖 발표와는 달리 행성이 곧 지구와 충돌할 것임을 알게 된다. 몇 시간 후 종말이 예정되자 이성과 과학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한 남편은 자살해 버리고, 극도의 불안에 휩싸인 클레어는 동생 저스틴, 아들 레오와 함께 마지막을 맞는다.
영화에서 멜랑콜리아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행성”이라 표현되며, 지구 주위를 도는 행성의 궤도는 “죽음의 춤”이라 불린다. 죽음, 예술, 그리고 아름다움의 연결이다. 또 영화 곳곳에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예술 작품이 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이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었고, ‘오필리아’(에버렛 밀레이)와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카라바지오), ‘게으름뱅이의 천국’(피터르 브뤼헐) 등 죽음을 소재로 한 여러 편의 회화가 삽입되었다. 이 예술 작품들은 죽음을 표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죽음 너머의 생을 가리킨다.
김은정 영화평론가
[영화 <멜랑콜리아>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