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4050이 2030에게 남긴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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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대선 이후 '청년=좌파' 공식
최근 청년층 우파 지지로 깨져
4050 지지한 복지·돈 풀기 정책
세금·나랏빚 늘고, 경제 활력 저하
"2030은 극우" 매도하기 전에
그동안의 정치적 선택 반성해야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어느 50대 대학 교수는 “(2030 세대를) 말라비틀어지게 만들고 고립시켜야 한다”고 했고, 또 어떤 대학 교수는 ‘극우 유튜브’에 빠진 10대 아들을 “대화를 통해 구출”했다고 했다. “극우 2030 남성은 극소수”라며 젊은 세대에서 감지되는 변화에 애써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해석도 보인다. “니들은 쓰레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유시민 작가)는 식의 막말까지 안 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40~50대는 지난 20여 년간 줄곧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시하고, ‘정의와 공정’을 외치며, 힘을 바탕으로 한 평화가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앞세우는 정치 세력에 높은 지지를 보냈다. 모든 선거에서 좌파가 승리한 것은 아니지만, 이 세대가 주도한 분배와 복지 담론이 매번 선거판을 흔들었다. 우파 정당조차 경제민주화를 간판으로 내걸고 집권 후엔 소득세 최고 세율을 높이는 등 ‘부자 증세’를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무상교육,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 이른바 무상 시리즈가 하나씩 실행됐고 기초연금, 아동수당, 부모급여 등 온갖 현금 지원 정책이 도입됐다.
복지를 확대한 배경엔 나름의 시대적 요구가 있었다. 기초연금으로 노인 빈곤이 완화되는 등 복지 정책의 순기능마저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 옛날 2030, 지금의 4050이 잘 몰랐거나 알면서도 외면한 사실이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이 언젠가는 청구서로 돌아온다는 평범하고도 당연한 원리다.
어떤 의미에서 40~50대는 순진했다. 부자와 대기업이 세금을 더 내도록 하면 그 돈으로 복지를 늘리고 빈부 격차를 줄여 모두가 행복해질 줄 알았다. 현실은 달랐다. 월급쟁이 세금인 근로소득세는 10년 만에 2.4배로 늘었다. 기업이 내는 세금인 법인세를 추월하기 직전이다. 극소수 부자만 내던 상속세는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으면 신경 써야 하는 ‘중산층 세금’이 됐다. 부자와 기업은 언제부턴가 이 땅을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좌파 정치인들은 나랏빚이 조금 늘더라도 복지를 확대해 불평등이 줄어들면 저소득층도 소비를 늘려 경제가 살아나고 나랏빚도 갚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학 교과서 어디에 그런 얘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믿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제성장률은 뚝뚝 떨어졌고, 국가 채무는 1년에 100조원씩 불어났다. 안보 환경도 나빠졌다. 4050이 지지한 정치 세력이 화해와 협력에 매달리는 동안 북한은 핵을 완성해갔다.
2030을 말라비틀어지게 하고 싶다면 굳이 저주를 퍼붓지 않아도 된다. 지난 세월 4050의 정치적 선택으로 발행된 청구서가 밀린 카드 대금처럼 2030을 내리누른다.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분석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평생 소득의 4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청년 회원이 많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세금으로 수수료를 먹게 해주는 것이 무슨 민생 대책이냐”며 전 국민 25만원 지역화폐의 본질을 지적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20~30대가 일찌감치 깨달은 사실을 40~50대가 돼서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누군가의 정치 성향에 ‘극우’ 딱지를 붙여 매도할 자격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40~50대라면 그동안 해온 정치적 선택과 그것이 초래한 결과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