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미술과 예술이 교차하는 공간, 알루그랑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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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현정의 미술을 미식하다"미식과 예술이 교차하는 공간, 알루그랑(Halle aux Grains)”
예술과 미식의 조화
파리 '피노 컬렉션' 미술관에 있는
레스토랑 '알루그랑(Halle aux Grains)'
미쉐린 3스타 셰프 미셸 브라스 & 세바스티앙 브라스
메인 재료인 '곡물'을 사용하여 셰프의 철학 구현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에 위치한 피노 컬렉션(Pinault Collection)은 케링 그룹의 수장인 프랑수아 피노의 화려한 컬렉션과 예술적 감성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거대한 중앙 돔에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 차가운 따뜻함을 포용하는 안도 타다오의 시멘트 벽 그리고 현대미술 작품과의 조화는 관람객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피노 컬렉션 3층에 있는 레스토랑 알루그랑(Halle aux Grains)에서는 특별한 미식을 즐길 수 있다. 이곳의 메뉴는 프랑스처럼 시크하면서도 화려하다. 음식이 담긴 접시 하나,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그리고 활기찬 스탭의 서비스 등 알루그랑은 고객들에게 잊지 못할 시간을 선물한다. 마치, 한 접시의 요리에 예술과 자연, 그리고 삶이 담긴 듯하다.
프랑스 보그 前 편집장 카린 로이펠트(Karine Roitfeld)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종종 등장하는 감각적인 레스토랑 ‘알루그랑’은 단순한 미식 공간을 넘어 역사와 예술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 레스토랑이 자리한 Bourse de Commerce(부르스 드 코메르스) 건물은 1763년 곡물 시장으로 설계된 이후, 증권거래소와 현대 미술관으로 변모하며 파리의 경제 및 문화적 변화를 반영해왔다.
이러한 역사적 유산을 계승한 알루그랑은 곡물을 테마로 한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며,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새로운 미식 경험을 제공한다. 레스토랑의 이름 ‘알루그랑’은 건물의 과거와 음식의 기초가 되는 곡물의 의미를 담아, 미식과 예술적 가치를 결합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로낭과 에르완 부훌렉(Ronan & Erwan Bouroullec)의 섬세한 디자인은 공간에 우아함과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 중세 레이스에서 영감을 받은 커튼은 고풍스러움과 모던함을 동시에 표현하며, 디테일 하나에 예술적 감각이 담겨 있다. 음식을 즐기는 동안, 방문객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적 경험을 체감하며, 알루그랑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처럼, 설계의 정교함 덕분에 단순히 음식을 맛보는 곳이 아니라 예술적 감동을 경험하는 특별한 장소로 자리 잡았다.
알루그랑은 미쉐린 3스타 셰프 미셸 브라스(Michel Bras)와 그의 아들 세바스티앙 브라스(Sébastien Bras)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미쉐린 3스타를 자진 반납하고 이곳에 새로 자리잡은 미셸 브라스는 요리 하나하나에 자연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다. 레스토랑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곡물은 이곳 요리의 핵심 주제이다. 곡물 시장이라는 공간의 역사를 지키며, 곡물이 서브 재료가 아닌 메인 재료로써 생동감 있게 주장하는 요리를 통해 셰프의 철학을 구현한다.
미술과 미식의 경계를 허물다 : 알루그랑이 선사하는 독창적 경험
알루그랑에서의 미식 경험은 곡물의 풍미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단품 메뉴도 주문이 가능하지만, 점심에 방문하면 3코스를 57유로에 즐길 수 있어 많은 미식가들이 찾고 있다. 식사의 시작은 메밀 버터와 새싹을 얹은 오트 비스킷. 가벼운 아뮤즈 부쉬는 신선한 프렌치 코스의 시작을 알린다. 여기에 페어링할 샴페인으로 델라모트(Delamotte)를 선택했는데, 오트의 풍미를 발산시키며 청량미를 돋우었다. 레스토랑이 추구하는 철학이 어떤 뉘앙스인지 아뮤즈 부쉬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 요리는 셰프의 고향인 프랑스 아베롱(Aveyron) 지방의 전통 치즈 요리인 ‘알리고(Aligot)’와 함께 제공되며, 지역성과 전통의 가치를 담아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알리고는 감자와 톰므 프레시(Tomme fraîche) 치즈를 녹여 만든 요리로, 부드럽고 쫀득한 질감이 특징이라 가니쉬로 곁들이기 적절하다. 치킨 발로틴은 저온에서 천천히 익혀 육즙을 머금고 있으며, 크리미한 알리고와 함께 먹으면 더욱 깊고 풍성한 풍미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비트 퓌레의 은은한 단맛이 치킨과 알리고의 고소한 맛을 강조한다.
알루그랑은 단순히 개별 재료의 맛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한 접시 안에서 건축과 미술, 자연과 인간, 그리고 요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곳은 미식 공간을 넘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소이다. 파리를 찾는 이들에게 특별한 미식의 순간을 선사하며, 피노 컬렉션은 그 순간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알루그랑에서의 미식 경험은 단순히 식사의 차원을 넘어, 감각과 사유를 자극하는 예술적 여행이 될 것이다.
김현정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