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만 잘 해두면 큰 돈 번다'…'새빨간' 딸기에 무슨 일이 [이광식의 한입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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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실내로 들어왔지만
보일러는 있어도 에어컨은 없어
저온성 작물, 더위에 취약해
"올해엔 과잉생산될 수도"
딸기는 귀엽다. 딸기를 소재로 한 이모티콘들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지난 겨울 딸기 가격은 제대로 뿔이 났다. 작년 11월 말 소비자가격이 100g당 3000원 넘게 치솟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딸기값은 평소보다 20% 높게 방방 뛰었다. 작년 여름 전국을 덮친 불볕더위 때문이라고 하지만, “배추도 아니고,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데 왜?”라며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생긴 것만큼이나 가격도 새빨갰던 딸기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3월이 돼서야 2000원 밑으로 떨어진 딸기값
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딸기(상품) 소매가격은 100g당 1467원으로 나타났다. 평년(1356원)보다는 8.2% 높지만, 전년(1663원)과 비교하면 11.8% 떨어진 수준이다.이런 얘기를 들으면 “딸기가 싸다고?”라며 믿지 않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지난 겨울 딸기 가격은 유독 높았다. 딸기는 통상 11월 말부터 유통되는데, 작년 11월 29일 딸기 100g당 소매가격은 3202원으로 시작했다. 딸기 소비자가격이 3000원대를 기록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딸기 소비가 가장 많은 크리스마스 때도 가격은 하늘을 찔렀다. 농산물유통 종합정보시스템(농넷)에 따르면 작년 12월 하순 딸기 100g 소매가격은 2748원으로, 전년(2230원) 대비 14.4% 높았고 평년(2027원)보다 19.9% 상승했다. 딸기 가격은 올 2월 초가 돼서야 2000원 밑으로 떨어졌다.
장기적으로 소비자가격을 결정하는 도매가격도 마찬가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월보에 따르면 지난 11월 딸기 도매가는 2㎏당 7만632원으로, 1년 전(6만4732원)보다 9.1%, 2년 전(5만321원)보다 40.4% 높았다. 평년(4만4615원)보다는 무려 58.3% 뛰었다.
땀흘리기 싫어하는 딸기, 늦더위가 복병이었다
농업계에선 딸기 가격이 급등한 원인으로 지난해 폭염을 꼽는다. 더위가 늦게까지 이어지면서 딸기 재배 자체가 지연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소비자들 가운데엔 “어차피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데 더위가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 이들이 많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우기 때문에 외부 영향을 덜 받지 않느냐는 것이다.집 밖에 살던 딸기는 비닐하우스로 들어왔다. 시설 딸기 재배면적은 1988년 4702㏊에서 2023년 5560㏊로 늘었다. 생산량은 더 크게 늘었다. 1988년 7만3335t에서 2019년 23만3291t으로 약 30년 만에 세배 넘게 늘었다. 가장 최신 자료인 2023년 기준 시설 딸기 생산량은 15만8604t이다.
이제 딸기는 비닐하우스에서 키우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보일러’는 있어도 ‘에어컨’은 없는 게 한국 시설재배의 현실이어서다. 외부 기온이 34도까지 오를 때 별도로 환풍 작용을 하지 않으면 시설 내부 온도는 70도까지 치솟는다. 환풍기를 열심히 돌려도 40도 안팎까지 기온이 오른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국내 비닐하우스 여건상 난방시설은 잘 갖춰도 냉방시설은 설치하지 못한 곳이 많다”고 했다.
딸기는 땀 흘리기 싫어한다. ‘저온성 작물’인 딸기는 주간 온도가 아무리 높아도 23도를 넘겨선 안 된다. 물론 너무 추워도 안 된다. 야간엔 8도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하루 평균온도는 14~16.5도로 관리하면서, 주야간 온도 변화가 10도 이상 나지 않아야 한다. 자칫 온도 편차가 심하면 ‘기형’ 딸기가 생산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여름 폭염에 이어 더위가 늦게까지 이어지면서 딸기 재배에 적정한 수준으로 기온을 낮게 유지하기가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여름은 지긋지긋하게 길었다. 기상청이 발표한 ‘2024년 가을철 기후 특성’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철 전국 평균 기온은 16.8도로, 평년(14.1도)보다 2.7도 높았다. 1973년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이다. 서울은 1948년 이후 76년 만에 ‘9월 폭염’이 발생했다. 강원 춘천도 9월에 열대야가 발생했는데, 기상관측 이래 처음이었다. 기상청은 “높은 기온이 11월 중순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 작년 11월 하순 수도권 지역에 내렸던 큰 눈도 북서 태평양의 해수온이 높게 유지된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딸기, 올해엔 과잉공급될 수도"
더위가 가을까지 계속되면서 작년에 딸기는 육묘가 평년보다 2주 정도 늦어졌다. 수확은 한 달 가까이 늦어졌다. 통상 딸기는 11월부터 수확되는데, 지난해엔 12월 중순이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장에 풀렸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 12월 기준 딸기 유통량이 평년보다 최소 15% 이상 적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공급은 늦어졌는데 수요는 평소와 비슷했다. 작년 12월 비상계엄에 무안 항공 참사까지 겹치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았다지만, 딸기는 큰 영향이 없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딸기는 ‘민심’보다 ‘소득’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다. 정시욱 논산시농업기술센터 딸기팀장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딸기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3만달러에 이르면 고정적인 수요가 생기는 작물”이라며 “아무리 가격이 비싸지더라도 계속 소비를 이어가는 특정 계층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올 연말 딸기값은 어떨까. 지구 온난화로 딸기 가격은 해마다 고공 행진할까. 꼭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폭염으로 딸기 생산이 늦어지는 것을 많은 농가가 학습했기 때문에 ‘냉방시설만 잘 갖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을 수 있다”며 “이번에 딸기가 한꺼번에 몰려서 생산될 수 있다”고 했다. 농가 중엔 지난겨울에도 저온 냉장고에서 육묘하는 방식으로 딸기를 키워 별문제 없이 시장에 출하한 곳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농식품부는 ”적어도 날이 더워서 딸기를 못 키우는 일은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올해에만 국비 24억원을 들여 환경 센서와 영상 장비, 양액재배시설 등 정보통신기술(ICT) 연계 시설을 포함한 시설 원예 온실 신개축을 지원한다. 기준단가는 철골 온실 ㏊당 30억원, 비닐온실은 ㏊당 7억5000만원이다. 올 연말 딸기값은 귀여울 수 있을까.
이광식 기자 bumeran@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