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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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오동진의 굳세어라 예술영화프랑스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제목의 포근함과는 달리 다소 낯선 느낌의 작품이다. 그건 순전히 감독과 배우들의 면면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들이다. 감독인 에르완 르 뒤크는 비교적 젊은 신예급이고 남자 주연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는 아르헨티나 배우이다. 영화 애호가들에게는 <페르시아 수업>으로 알려져 있긴 하다. 여우 주연 셀레스트 브룬켈은 2002년생이다. 아직 아역 급이다. 영화에서도 18살로 나온다. 그런데 영화는 뜻밖이다. 그것도 아주. 그 이유는 영화의 서사를 꽤 시적으로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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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런 식이다. 딸 로자(셀레스트 브룬켈)의 남자 친구 유제프(모하메드 루리디)는 날마다 그녀 집에서 자고 간다. 멀쩡한 계단을 놔두고 그녀의 아빠 에티엔(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의 눈을 피해 2층 창문으로 기어 올라가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그러면서도 둘은 섹스는 하지 않는다. 로자는 아빠 에티엔에게 유제프와 자게 되면 그 첫 경험 얘기는 꼭 공유하겠다고 말한다. 에티엔과 로자 부녀는 특별하다. 로자가 유제프와 자지 않는 이유는 아빠가 상심할까여서다. 로자는 에티엔을 아빠 이상으로, 삶의 동반자이자 반려자로 사랑한다. 그렇다고 이성으로까지는 아니다.
에티엔은 혼자 이를 악물고(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이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딸아이를 키워냈다. 그는 당연히 너무 힘들고, 너무 외롭고, 너무 죽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딸아이 로자를 위해 삶을 견디며 살아왔다. 18살 된 로자는 그걸 잘 알고 있으며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굴지만, 메스 대학으로 자기가 떠나면 아빠는 어떻게 될까, 마음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린다. (역시 영화에서는 그런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에티엔은 유제프의 이런 말들에 다소 황당해한다.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제프가 자신과 딸의 얘기를 시로 쓰는 것에는 반대한다. 영화는 이런 톤 앤 매너를 잘 끌어간다. 보다 보면 그게 이상하지 않다. 삶이란 것이 워낙 울퉁불퉁하고 길고 긴 힘든 길이어서인지 살아가면서 중간중간 시처럼 대화하는 게 뭐 어떠냐 하는 느낌이 든다. 뭐 그럴 수도 있다. 뭐 그러는 게 더 좋아 보인다. 우리의 삶에는, 특히 지금 시가 필요하다.
에티엔은 우연히 TV에서 로자의 친엄마 발레리의 모습을 본다. 너무 멀쩡한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애인 엘렌은 이런 에티엔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음을 감지한다. 이사 준비를 하는(로자가 학교 기숙사로 가면 집을 팔고 엘렌과 둘이서 살 집으로 갈 생각이다.) 그에게 찾아와 남자를 장난치듯 이삿짐을 넣을 큰 상자에 집어넣는다. 남자는 자기도 이 포장 물건들과 함께 버려 달라고 말한 참이며 더 이상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우울해한다. 이 장면이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에서 가장 좋다. 엘렌은 말한다. 그건 언젠가 에티엔이 엘렌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상냥하게 대해 줘 / 눈물이 마르길 원해 / 모나지 않는 사랑을 원해 / 직각은 이제 그만 / 상처도 그만 / 충격받는 일도 그만 / 곁눈질도 그만 / 형식적인 입맞춤도 그만 / 우리만의 열정을 만들어 내길 바라 / 오직 우리만의 / 사라지지 않는 심오한 기쁨”
에티엔과 로자, 엘렌 그리고 유제프는 ‘중세 시대의 궁정 연애’ 같은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그때의 대화에는 운율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초원의 빛>을 읽고 보는 느낌을 준다. 그 시처럼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불멸의 낭만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 오히려 강한 힘으로 살아남아’ 라는 시구가 떠올려진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