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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arte]오동진의 굳세어라 예술영화

제76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
영화
프랑스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제목의 포근함과는 달리 다소 낯선 느낌의 작품이다. 그건 순전히 감독과 배우들의 면면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들이다. 감독인 에르완 르 뒤크는 비교적 젊은 신예급이고 남자 주연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는 아르헨티나 배우이다. 영화 애호가들에게는 <페르시아 수업>으로 알려져 있긴 하다. 여우 주연 셀레스트 브룬켈은 2002년생이다. 아직 아역 급이다. 영화에서도 18살로 나온다. 그런데 영화는 뜻밖이다. 그것도 아주. 그 이유는 영화의 서사를 꽤 시적으로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딸 로자(셀레스트 브룬켈)의 남자 친구 유제프(모하메드 루리디)는 날마다 그녀 집에서 자고 간다. 멀쩡한 계단을 놔두고 그녀의 아빠 에티엔(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의 눈을 피해 2층 창문으로 기어 올라가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그러면서도 둘은 섹스는 하지 않는다. 로자는 아빠 에티엔에게 유제프와 자게 되면 그 첫 경험 얘기는 꼭 공유하겠다고 말한다. 에티엔과 로자 부녀는 특별하다. 로자가 유제프와 자지 않는 이유는 아빠가 상심할까여서다. 로자는 에티엔을 아빠 이상으로, 삶의 동반자이자 반려자로 사랑한다. 그렇다고 이성으로까지는 아니다.
영화 &lt;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로자는 그림을 잘 그리고 프랑스 동북부에 있는 예술전문대학인 메스에 입학 허가를 받은 참이다. 로자가 그림을 잘 그리는 이유는 엄마인 발레리(메르세데스 다시)의 유전자 덕인데, 발레리는 에티엔과 하룻밤 정염으로 로자를 낳은 후 아이가 갓난아기일 때 부녀를 버리고 떠났다. 이 가족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에티엔은 해안 작은 도시의 시청 아마추어 축구단 코치를 하고 살아가면서 택시 기사인 엘렌(모드 와일러)과 사귀는 사이이다. 로자는 엘렌에게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는 사귀고 있느냐고 묻는다. 엘렌은 로자에게 에티엔이 섹스 후에 품에 안겨 우는 유일한 남자라고 답한다.

에티엔은 혼자 이를 악물고(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이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딸아이를 키워냈다. 그는 당연히 너무 힘들고, 너무 외롭고, 너무 죽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딸아이 로자를 위해 삶을 견디며 살아왔다. 18살 된 로자는 그걸 잘 알고 있으며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굴지만, 메스 대학으로 자기가 떠나면 아빠는 어떻게 될까, 마음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린다. (역시 영화에서는 그런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영화 &lt;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랑은 언제나 사라지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건 마음의 진심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섹스나 물질적인 무엇 등등 때문은 절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에티엔과 로자 부녀는 행복했고 행복하다. 둘이 늘 같이 있었으니까. 로자는 자신이 어릴 때 아빠가 했던 이야기를 늘 기억하고 살아간다. “엄마를 사랑해?” “아니 사랑하지 않아.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으니까.” “아빠도 떠날 거야?” “아빠는 그럴 일 없어. 절대로. 널 영원히 사랑할 거야.” 영화는 전혀 그러지 않은 척 슬쩍슬쩍 마음을 훔쳐 나가기 시작한다.
영화 &lt;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그건 그렇고 영화가 꽤 시적인 이유는 일단 로자 남친 유제프 때문이다. 그는 시를 쓴다. 서사가 있는 대하 시(마치 시인 신동엽의 작품처럼)를 쓰고 싶어 하고 그 소재는 이 부녀의 비극적인 삶이다. 유제프는 밥상머리에 앉아 에티엔에게 반 고흐의 말을 빌려 이렇게 얘기한다. “언젠가 우리는 냉소주의와 회의주의의 농담에 질려서 좀 더 음악적으로 살기를 바랄 것이다.”

에티엔은 유제프의 이런 말들에 다소 황당해한다.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제프가 자신과 딸의 얘기를 시로 쓰는 것에는 반대한다. 영화는 이런 톤 앤 매너를 잘 끌어간다. 보다 보면 그게 이상하지 않다. 삶이란 것이 워낙 울퉁불퉁하고 길고 긴 힘든 길이어서인지 살아가면서 중간중간 시처럼 대화하는 게 뭐 어떠냐 하는 느낌이 든다. 뭐 그럴 수도 있다. 뭐 그러는 게 더 좋아 보인다. 우리의 삶에는, 특히 지금 시가 필요하다.
영화 &lt;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로자가 다니는 고등학교 교정은 종종 시위가 벌어지는데 평화시위이다. 문구도 이런 것이다. “시 안에 인간적 진리가 싹 터 승리할 수 있다. 올해 우리는 사람보다 학위를 더 얻었다.” 아이들이 마크롱을 비난하는 수준을 영화는 귀엽게 그려 나간다. 영화가 지닌 이런 위트와 유머 감각 역시 감독 에르완 르 뒤크의 시적 감수성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에티엔은 우연히 TV에서 로자의 친엄마 발레리의 모습을 본다. 너무 멀쩡한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애인 엘렌은 이런 에티엔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음을 감지한다. 이사 준비를 하는(로자가 학교 기숙사로 가면 집을 팔고 엘렌과 둘이서 살 집으로 갈 생각이다.) 그에게 찾아와 남자를 장난치듯 이삿짐을 넣을 큰 상자에 집어넣는다. 남자는 자기도 이 포장 물건들과 함께 버려 달라고 말한 참이며 더 이상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우울해한다. 이 장면이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에서 가장 좋다. 엘렌은 말한다. 그건 언젠가 에티엔이 엘렌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상냥하게 대해 줘 / 눈물이 마르길 원해 / 모나지 않는 사랑을 원해 / 직각은 이제 그만 / 상처도 그만 / 충격받는 일도 그만 / 곁눈질도 그만 / 형식적인 입맞춤도 그만 / 우리만의 열정을 만들어 내길 바라 / 오직 우리만의 / 사라지지 않는 심오한 기쁨”

에티엔과 로자, 엘렌 그리고 유제프는 ‘중세 시대의 궁정 연애’ 같은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그때의 대화에는 운율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초원의 빛>을 읽고 보는 느낌을 준다. 그 시처럼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불멸의 낭만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 오히려 강한 힘으로 살아남아’ 라는 시구가 떠올려진다.
영화 &lt;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낭만의 서정주의는 어두운 시대와 세상에 한줄기 초원의 빛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시대의 의지는 어쩌면 서정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래서, 좋은 영화임을 넘어 필요한 영화이다. 따뜻하다. 그게 어디인가. 2023년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폐막작이었다. 지난 2월 26일 개봉돼 작은 극장가에서 숨죽이며 관객들을 기다리는 중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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