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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의 밀턴이 눈 멀고 쓴 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내 눈의 빛이 사라진 걸 생각하니
존 밀턴

내 눈의 빛이 사라진 걸 생각하니,
이 어둡고 광활한 세상에서 반생도 살기 전에
생명 같은 재능이 쓸모없어졌구나.
비록 내 영혼은 창조주를 간절히 섬기길 원하나,
그분이 훗날 탓할까 봐, 내 한 일을 설명하려 할 때,
나는 어리석게 묻네,
“내 눈을 멀게 하시고는 어찌 노동을 원하시는지요?”
하지만 그 불평을 가로막고 신중한 대답이 들려오네,
“신은 인간의 노동이나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네,
그의 가벼운 멍에를 가장 잘 메는 자가
그를 가장 잘 섬기나니.
그는 왕과 같네. 그의 말 한마디에 수천의 무리가
육지와 바다를 건너 쉬지 않고 달려올 테니.
묵묵히 서서 기다리는 자들도 그를 섬기는 사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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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인 존 밀턴(1608~1674)이 44세 때 시력을 잃고 쓴 시입니다. 그의 실명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전해집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서 눈을 혹사했고, 청교도 혁명 때 크롬웰 정부의 라틴어 비서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과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시의 제목은 원래 ‘소네트 19’였다가 훗날 편집 과정에서 ‘소네트 16’으로 바뀌었습니다. ‘실명(On his blindness)’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시인은 생을 절반밖에 살지 못했는데 벌써 눈이 멀었다고 불평합니다. 이제 내 삶은 끝났다고 한탄하다가 신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 대목에 등장하는 ‘생명 같은 재능(Talent)’은 성경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와 맞닿아 있다고 합니다. ‘달란트’는 옛날 화폐이기도 하고, 각자 타고난 재능이기도 합니다. 주인이 먼 타국으로 출타하면서 종 세 명에게 각각 재능대로 금 5달란트와 2달란트, 1달란트를 줬지요. 주인이 돌아와 결산할 때 첫 번째 종은 두 배인 10달란트, 두 번째 종은 4달란트로 불려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종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1달란트를 땅에 감췄다가 그대로 내놓으므로 게으르다는 꾸짖음을 듣고 쫓겨났습니다.

시인으로서는 시력을 잃어 글 쓰는 재능(달란트)를 발휘할 수 없게 됐으니 절망적인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내 눈을 멀게 하시고는 어찌 노동을 원하시는지요?” 눈이 멀었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고, 따라서 신께 바칠 노동 의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태복음 20장의 포도밭 주인이 일꾼들에게 품삯을 계산하는 부분과 요한복음 9장의 맹인 시력을 되찾아주기 전 예수가 “밤이 되면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말한 부분을 원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순간 내면의 목소리가 불평을 가로막으며 신중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신은 인간의 노동이나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구원은 그런 노동이나 재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온다고 말입니다.

‘그의 가벼운 멍에를 가장 잘 메는 자가/ 그를 가장 잘 섬기나니’라는 구절은 마태복음 11장의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와 통합니다. 신의 뜻에 순종하되 성실하게 사는 것만이 피조물의 자세라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묵묵히 서서 기다리는 자들’도 신을 섬기는 데는 다를 바 없다는 위안의 메시지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이 시의 마지막 ‘묵묵히 서서 기다리는 자들도 그를 섬기는 사람들(They also serve who only stand and wait)’이란 어구는 영어권에서 자주 인용됩니다. 야구 경기장에서 대기석에 있는 선수들을 지칭할 때 등에 쓰이지요.

밀턴은 44세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왕정복고 이후 갖은 고초를 당하며 몰락했지만, 이 같은 시련을 극복하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과 <복낙원(Paradise Regained)>, <투사 삼손 (Samson Agonistes)>을 잇달아 완성했습니다. 특히 인간의 타락과 구원을 주제로 한 <실낙원>은 1만565행에 달하는 대작이지요. 단테의 <신곡>과 함께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가 이미 눈이 먼 상태에서 딸에게 구술해 완성한 것이기에 더욱 놀라운 작품입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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