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곯던 소년 눈에 비친 모란, 80대 노인의 캔버스에 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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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 노화랑 '정의부'展모란은 꽃말은 부귀영화이지만, 작가의 기억 속 모란은 넉넉함과 거리가 멀다. 촌지를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에서 자란 소년이 있었다. 교실 대신 길바닥에서 시간을 보내던 5월의 어느날 활짝 핀 모란이 눈에 들어왔다. 그 꽃봉오리가 어찌나 탐스러워 보였을까. 일평생 캔버스 수백점에 모란을 피운 고(故) 정의부 화백(1940~2022) 얘기다.
'모란' 시리즈 등 사생화 외길인생
교육자이자 화단의 '마당발' 작가 조명
울릉·제주 여행하며 남긴 풍경화도
이번 전시는 작가의 아들인 정서호씨의 협업으로 기획됐다. 30여년 차 산부인과 전문의인 정씨는 얼마 전 홍대 회화과에 입학한 늦깎이 미술학도다. "도봉산 설경을 그리러 나선 선친을 여덟살 때 따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힘든 작업을 왜 하시는지 이해되지 않았죠. 환갑을 앞둔 제가 붓을 집어 든 걸 보니, 역시 아버지의 DNA가 남아있나 봅니다."
모란 시리즈는 생전 작가가 남긴 작품 3000여점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작가의 석사 논문 주제였던 고갱을 빼닮은 중후한 선과 선명한 색조가 특징이다. 작가가 동경했다고 알려진 운창 임직순 선생의 화풍과도 맞닿아 있다. 꽃과 동네 주민 등 시골 전경을 정감 어린 색채로 묘사한 점에서다.
사생화를 추구한 작가는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찾았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1980년대부터 캔버스를 싸 들고 남태평양과 미주, 유럽 등을 유랑했다. 국내에 머물 때도 주말마다 아들 정씨와 함께 답사에 나서곤 했다. 정씨는 "아파트를 분양받고자 모아둔 돈을 홀딱 들고 떠나시기도 했다"며 웃었다. 전시에 걸린 3점의 풍경화는 통영과 울릉도, 제주도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