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도시를 수호하는 우아한 바로크 성당,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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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태남의 유럽도시 예술 산책이탈리아 반도 북동쪽 베네치아-메스트레(Venezia-Mestre)역을 출발한 기차가 속도를 줄이면서 약 4㎞에 달하는 다리 위를 지날 때, 차창에는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멀리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에 숨어있는 듯한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가 불가사의로 가득한 미궁(迷宮)처럼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온다. 이와 같이 베네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처럼, 모래나 흙이 쌓여 바다가 막혀 생성된 큰 호수 같은 바다를 이탈리아어로 라구나(laguna; 영어로는 lagoon)라고 하는데 보통 석호(潟湖)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기차역 밖으로 나오면 자동차라곤 한 대도 안 보인다. 이곳의 교통수단은 모두 배이기 때문이다. 역 앞 광장 부두에는 베네치아의 동맥인 대운하를 따라 베네치아의 심장인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이곳에서 말하는 '버스’는 '증기선’이란 뜻의 바포렛토(vaporetto)라고 하는 중형 선박이다. 물론 지금은 증기기관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지만.
바포렛토가 대운하를 따라 서서히 물살을 가르기 시작하자 좌우로 황홀한 광경이 서서히 펼쳐진다. 대운하 양쪽에는 섬세한 창문들이 돋보이는 베네치아식 고딕풍 건축물들이 물 위에 떠 있는 듯 가볍게 보인다. 바포렛토가 약 3.5㎞쯤 지났을 때, 오른쪽 전면 멀리서 커다란 쿠폴라(cupola, 영어로는 돔dome)가 보름달처럼 서서히 솟아오른다. 그 옆으로 다가가자 베네치아 고유의 고딕식 건축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하얀 우아한 성당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성당은 베네치아 바로크 건축의 백미로 손꼽힌다. 바로크 건축은 르네상스 건축의 조화롭고 균형 잡힌 형식에서 벗어나 더욱 역동적이고 극적인 표현을 추구했다. 이 양식은 16세기 말 로마에서 시작하여 18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유럽 여러 나라로 퍼졌는데, 베네치아에 도입된 것은 17세기 전반이다. 바로 이 성당이 고딕과 르네상스풍 건축물들이 주요 랜드마크가 되는 베네치아의 도시경관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재앙을 딛고 일어선 베네치아의 상징
한편 성당 이름에서 산타 마리아(Santa Maria)는 '성모 마리아', 델라(della)는 영어의 'of the', 살루테(Salute)는 '건강'이라는 뜻인데 어떻게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오늘날의 베네치아는 하나의 도시에 불과하지만 1797년까지는 1000년 역사를 자랑하던 하나의 나라였다. 즉, 선출된 최고 통치자 도제(Doge)가 이끄는 강력하고 부유한 해상 공화국으로 지중해 무역을 주름잡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베네치아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선박과의 교역으로 인해 유입되는 전염병에 노출돼 있었다는 것. 국가 차원의 세심한 방역 조치에도 불구하고 1576년에 흑사병이 베네치아를 덮쳐 15만 명의 인구 중 4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역병이 물러나자 베네치아 정부는 하늘의 은총에 감사하여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건축가 팔라디오(1508-1580)에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일 레덴토레(Il Redentore, 구세주) 성당을 주데카 섬에 세우도록 했다. 이 성당은 1577년에 착공, 팔라디오가 사망한 지 12년이 지난 1592년에 완공되었다.
이 성당이 완공된 지 약 40년이 지난 1630년 6월에 또 흑사병이 창궐했다. 이번에도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오자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은 역병 퇴치의 성인에게 바쳐진 산 로코 성당을 찾아가 은총을 구하는 등 별의별 종교적 수단을 동원했다. 그런다고 상황이 호전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 베네치아의 대교구장 티에폴로는 그해 10월 22일, '시시한’ 성인이 아니라 아예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에게 웅장하고 화려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을 지어 바치겠다고 공포했다. '건강’을 뜻하는 '살루테’는 종교적으로 '구원’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이어서 10월 26일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통치자 도제 콘타리니와 대교구장과 시민들이 산 마르코 광장에 모여 하늘의 은총을 간구하는 기도를 올렸다.
새로운 성당은 산 마르코 광장에서 나오면 눈에 확실히 보이는 대운하 입구의 세관 건물 바로 옆에 세우기로 했다. 설계는 공모전에 당선된 30대 초반의 젊은 건축가 롱게나(B. Longhena 1598-1682)가 맡았고 성당 공사는 1631년에 시작되었다. 그해 흑사병은 수그러들었다. 누적 희생자는 베네치아 전체 인구의 약 1/3에 해당하는 47,000명에 달했다.
비발디의 밝은 음악이 녹아든 듯한 바다 위로 솟아오른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은 이처럼 베네치아를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의 재앙 속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따라서 이 성당은 단순한 성전이 아니라 고통을 견딘 자들이 세운 순백의 기념비인 셈이다. 이 하얀 성당은 낮이면 남국의 태양 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저녁이면 노을에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섬세한 실루엣을 드러내는데, 멀리서 보면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를 수호하고 축복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