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소비재 산업에 거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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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광 유통산업부 차장
올해 들어 우리 경제는 암울한 전망으로 가득하다. 반도체, 자동차, 화학 등 한국의 수출 주력 품목 판매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경제 성장이 크게 둔화하고 있는 게 주된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들 품목에 대규모 관세를 매길 예정이라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것은 없어 보인다. 저성장이 아니라 ‘제로 성장’에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삼양식품, 불닭 수출 年 1조 달성
하지만 삼양식품의 사례처럼 한국 경제 전체로 봤을 때 소소해도 그 나름의 의미 있는 성과 또한 적지 않다. 더구나 삼양식품은 혼자서만 잘한 게 아니다. 조력자가 많았다. 한국의 잘 만들어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많은 외국인이 한국 라면을 알게 됐고, 한국의 편의점과 대형마트가 해외로 진출하자 여기서 손쉽게 살 수 있게 된 것도 한몫했다. 한국 소비산업 전반의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미국 등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화장품도 그렇다. 조선미녀, 티르티르, 메디힐 등 대부분이 중소형 ‘인디 브랜드’인데, K팝과 K드라마를 통해 한국 연예인이 인기를 얻은 덕분에 잘 알려졌다. 또 이들 인디 브랜드의 성공 뒤에는 코스맥스, 한국콜마 같은 전문 제조사가 있었다. 밸류체인 전반이 수혜를 봤다는 의미다. 올리브영과 다이소가 인디 화장품의 ‘성지’로 떠오르자, 외국인들이 한국 화장품을 쓸어 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올리브영은 해외 수요를 잡기 위해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올리브영의 해외 매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많은 K뷰티 브랜드가 해외 진출 기회를 잡을 것이다.
브랜드·제조·유통 원팀 시너지
소비재 산업의 한 축인 유통의 해외 진출은 판로 개척 효과까지 있다. 중국을 보면 극명히 알 수 있다. 중국은 2~3년 전부터 대대적으로 ‘크로스보더 e커머스’ 산업을 키우고 있다. 자국 내 상품 재고가 쌓이고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을 적극 활용 중이다. 이들 쇼핑 플랫폼을 통해 자국 상품을 해외로 밀어내듯 수출하면, 자국 내 공장 가동률이 올라가고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실제 한국의 유통사도 이런 수출 상사 역할을 하고 있다. 베트남, 몽골 등 해외에서 약 600개 편의점 매장을 운영 중인 GS25는 올해 수출 1000만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지 물건뿐만이 아니라 한국 상품을 판매하는 ‘K식품 플랫폼’이 되는 게 목표다. 롯데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 롯데마트를 진출시키고 이곳을 통해 빼빼로 등 롯데웰푸드 주력 제품을 대규모로 판매 중이다. 롯데웰푸드는 빼빼로 한 품목으로만 연간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백척간두에 선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요원하다.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 산업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불닭볶음면 같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품목을 키워내는 일에도 소홀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