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될 수 없다"…현장체험학습 줄줄이 취소하는 이유 [이미경의 교육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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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사고 교사 실형 영향
"교사 1인이 학생 30명 보는 건 무리"
"학습권 침해" 학부모 반발 심화
오는 6월 학교안전법 개정안 시행
"모호한 규정 구체화해야" 지적도
22일 교육계에 따르면 현장학습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전국 유치원·초·중·고교 교원 611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현장체험학습을 계획대로 하는 학교는 51.7%에 그쳤다. 이동 거리를 줄여 진행하는 곳은 15.2%, 취소 또는 보류한 곳은 21.8%였다. 11.3%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 형사처벌 사례 뒤 기피 확산
교사들은 예기치 못한 사고를 교사가 막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담임교사 1명이 학생 20~30명을 인솔하는 현 구조에서는 안전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7년 차 초등교사 박소연 씨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아이들은 물론 신호, 주변 차량 상황까지 모두 살펴야 한다”며 “교사가 최대한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긴 하지만 혼자서 이런 변수를 모두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학부모는 현장학습 취소 결정에 반발했다. 학생들의 다양한 학습 기회가 제한된다는 이유에서다. 초교 3학년 학부모 홍민정 씨는 “현장학습은 아이들이 몸으로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교육 기회”라며 “교사와 학교의 이런 결정은 일종의 학습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경기 양주의 한 초교에서는 현장학습 취소 방침에 학부모들이 “직무 유기와 학습권 침해로 교사를 고발하겠다”고 반발했다. 실제 고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후에도 전국 시·도교육청에는 비슷한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현장학습 진행 여부는 각 학교의 자율적인 결정 사항”이라며 “이를 교육청이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모호한 안전조치 의무 기준
시행령 구체화가 오히려 교사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교육부와 전국 시·도교육청이 지난해 말부터 각 학교에 배포 중인 ‘현장체험학습 운영 안내’ 매뉴얼의 안전 관련 체크리스트를 두고도 교사들 사이에선 ‘과도하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매뉴얼에 포함된 교통안전, 식사, 화재 예방 관련 점검 사항만 67개에 달한다. 여기에 수상활동, 전시공연 등 세부 활동별 점검 사항까지 더하면 그 수가 79~90개로 늘어난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행령 마련을 위해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그중에는 구체적인 시행령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올해 시행령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미경 기자 capital@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