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 28년 만에 돌아온 <쉬리>
입력
수정
[arte] 김은정의 그 영화 다시 볼 이유‘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역사다. 1999년 개봉해 극장가를 휩쓸었던 <쉬리>가 지난 19일 재개봉했다. 28년 만에 돌아온 <쉬리>는 그간 지식재산권(IP)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못한 제작사의 사정으로 재개봉이나 OTT의 콘텐츠로 활용되지 못했다.
액션 멜로에 녹아든 분단의 그림자
1999년 영화 4K 리마스터링 재개봉
당시 보기드문 첩보 액션으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문을 열다
4K로 리마스터링된 이번 재개봉은 그 시절 관객에게는 향수를, <쉬리>를 제목으로만 알고 있는 오늘날의 20~30대 관객에게는 한국 영화의 역사를 마주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니 두 가지로 생각해 보자. 무엇이 할리우드의 공식이고, 무엇이 한국의 성격인가. 먼저 테러를 일으키려는 집단과 이를 막으려는 특수요원의 쫓고 쫓기는 첩보 액션 서사는 할리우드의 전략이다. 당시 한국 영화는 가벼운 코미디, 최루성 멜로, 삼류 깡패들의 세계를 그린 경우가 많았는데 본격 첩보 액션이라는 장르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시도였다.
<쉬리>는 당시 국내 상업영화 평균 제작비의 2배가 넘는 약 30억 원(홍보비 포함)을 투입해 스펙터클한 첩보 액션 장면을 만들었다. 대낮 도심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총격 장면, 폭탄 테러로 쇼핑몰이 파괴되고, 테러 집단이 최신형 무기를 실은 차량을 탈취하는 등 오늘날 관객에겐 액션 영화의 클리셰처럼 익숙한 설정이지만 당시엔 보기 드문 스펙터클이었다. 또 당대 최고의 스타 한석규를 비롯해 최민식, 송강호 등의 캐스팅도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동시에 ‘한국형’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쉬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표방하면서도 한국의 정체성과 정서를 담았다. 이 영화는 테러를 저지르려는 북한 특수군단에 맞서는 비밀요원 ‘중원’(한석규)과 그의 연인 ‘명현’(김윤진)의 이야기다. 첩보 액션물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장르인 멜로드라마를 결합했다. 이 장르적 결합의 소재는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성이고, 이것은 두 주인공의 극복할 수 없는 사랑의 장애물이 된다.
명현이라는 인물은 <쉬리>의 방향을 잘 보여준다. 그녀의 정체는 살인 병기로 훈련된 남파 요원 ‘이방희’다. 북한 특수부대원이라는 정체를 성형과 신분 세탁으로 숨기고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연인을 향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슬픈 결말에 이른다. 한국 사람으로도 북한 사람으로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 연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눠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관계, 명현은 분단이 만들어낸 정체성의 혼란과 한계를 표현한 인물인 것이다.
김은정 영화평론가
[영화 <쉬리> 4K 리마스터링 재개봉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