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시공간에 무한을 담는, 블랙홀이라는 가장 완벽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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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살아계시는 분 중 제가 존경하는 분은 영국의 브라이언 콕스예요. 이분에게 굉장히 영감을 많이 받았죠.”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일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물리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꼽은 브라이언 콕스의 신간 <블랙홀>이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궤도가 보내온 서평을 소개한다.
브라이언 콕스 / 제프 포셔 지음
박병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392쪽│3만3000원
英 과학자 브라이언 콕스가 쓴
비전공자를 위한 블랙홀 설명서
"따뜻함과 차가움이 충돌하는 책
정답 대신 밤하늘 볼 용기 줘"
그는 평범한 수준의 사전 지식을 보유한 독자라면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려는 친절한 안내를 해내면서도 세밀하고 현실적인 수학의 구조를 완벽하게 이어 나가려는 시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사건의 지평선, 펜로즈 다이어그램, 슈바르츠실트 해, 호킹 복사 등 언젠가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 있던 블랙홀의 단어들은 이제 더 이상 모호하게 겉돌지 않고 우주와 인간, 영원과 찰나 사이에서 건져 올린 한 편의 장대한 수필처럼 구체적이며 빼곡하게 그려진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의 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의 손에 시간과 공간이 닿는 극적인 순간, 마름모 안에서 과거와 미래가 정의되며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시공간의 단면을 따라 이동한다. 접히고, 뒤집히고, 굽히고, 확장되는 다이어그램의 구조는 최신의 진실을 담아 가장 정밀한 블랙홀을 서술하기 위해 애를 쓴다. 단순한 물리적 객체를 넘어 비가역적인 시간과 정렬된 공간이 침묵하는 블랙홀의 존재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하고 있던 가능성에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질량, 전하, 스핀만으로 구분되는 단순한 블랙홀의 복잡한 속사정은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증인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며, 당대 저명한 물리학자들마저 괴롭힌 블랙홀의 정보 역설과 상보성 원리는 엔트로피와 호킹 복사를 거쳐 양자 얽힘에까지 이르면서 마치 새카만 종이 위에 쓰인 희미한 은빛 글자처럼 빛나는 형태로 뇌에 분명히 새겨진다.
수학을 근간으로 하지만 수식이 존재하지 않는 물리학은 이성적인 논리로 말하면서도 감정을 울리는 독특한 장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으로 관측해낸 두 개의 블랙홀은 완벽한 암호를 해독해낸 과학기술의 쾌거인 동시에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한 유일한 순간이다. 홀로그램 우주론과 양자컴퓨터까지 확장되는 마지막 장에선 마침내 블랙홀의 경계마저 넘어선다.
궤도 과학 커뮤니케이터, <과학이 필요한 시간>·<궤도의 과학 허세>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