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서 뜬 '수건 케이크' 2주 만에 출시…제조사는 석 달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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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가 더 잘 팔린다…소비재 시장 흔드는 유통사들
◇‘가성비’ 넘어 ‘트렌드 주도’까지
경기 불황을 이겨내고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쿠팡과 무신사도 PB 효과를 톡톡히 봤다. 상품 기획과 제작의 전권을 쥐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실시간으로 반영한 결과다. 쿠팡의 PB 전문 계열사 씨피엘비 매출은 2021년 1조568억원에서 2023년 1조6436억원으로 2년 새 55.5% 급증했다.
무신사가 운영하는 PB 무신사 스탠다드는 같은 기간 매출이 872억원에서 2605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단순 PB를 넘어 예전의 영화관처럼 백화점과 대형마트, 쇼핑몰들이 유치하고 싶어 안달하는 ‘앵커 테넌트’(핵심 입점업체)가 됐다. 지난해 ‘백화점 1층은 명품 브랜드 전용 공간’이라는 상식을 깨고 롯데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 1층에 입점했다.
유통사 PB는 일반 제조회사 상품(NB)에 비해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다. 제조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통사 PB는 상품기획자(MD)가 SNS나 점포 판매량 등을 분석해 트렌드를 파악하면 곧바로 상품 콘셉트를 잡고, 중소 제조사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맡긴다.
반면 CJ제일제당이나 농심처럼 자체적으로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추고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의사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번에 생산하는 양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회사가 신제품 하나를 내놓으려면 아무리 빨라도 3~4개월, 일반적으로 6~8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게다가 유통회사가 직접 기획을 하면 유통 단계가 줄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기도 쉽다. 이런 이유로 디저트 카테고리에서 CU의 PB 매출 비중은 SPC삼립 등을 제치고 지난해 전년보다 6%포인트 뛴 78.3%로 치솟았다. CJ올리브영 등도 자체 MD를 통해 매대에서 팔 상품을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결정하고 있다.
◇산업 구도 뒤흔드는 PB
기획과 제조를 통합하는 유통업계의 파워는 산업 구도까지 바꾸고 있다. 쿠팡이 대표적이다. 업계에선 쿠팡이 신세계, 롯데 등을 제치고 ‘압도적 1등’이 된 데는 PB의 역할이 상당했다고 본다. 쿠팡은 반복 구매가 많은 생필품(코멧·탐사)부터 식품(곰곰·딜리조이), 생활가전(홈플래닛), 뷰티(비타할로), 패션(캐럿·롤리트리) 등 PB 29개를 운영 중이다. 업계에서 “빠른 배송 외에 쿠팡의 숨은 경쟁력은 바로 상품 기획력”이란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편의점업계에서도 CU가 자체 기획 상품을 앞세워 ‘매출 1등’ GS25를 빠르게 쫓고 있다. GS25와 CU의 매출 격차는 2019년 9130억원에서 지난해 738억원으로 확 줄었다. 이마트도 뒤늦게 노브랜드 PB를 편의점 계열사 이마트24에 납품해 계열사 간 시너지를 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유통업체의 PB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기존 NB 제조 기업들이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상품 진열 권한을 쥔 유통사가 오프라인 매대나 온라인 홈페이지 상단에 PB를 우선 배치하면 NB는 자연히 밀릴 수밖에 없다.
이선아 기자 suna@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