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고 팔았다?…버핏과 리카싱, 그들은 어떤 위기를 봤을까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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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어 보이는 불확실성과 예상보다 더 공격적인 관세 우려에 미국 증시는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31일(현지시간) S&P500 지수는 한때 1.65% 급락했다가 0.55% 오른 5,611.85에 장을 마쳤습니다. 투자자들은 올라도 왜 올랐는지 이유를 찾느라 불안한 모습입니다.
나침반을 찾기 어려운 시장에서 월가는 수년째 현금을 비축해온 '투자의 전설'들에 새삼 주목하고 있습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과 '홍콩의 수퍼맨' 리카싱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특히 리카싱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시아의 버핏'이라고도 불리는 리카싱은 중국 출신이지만 홍콩에 자리를 잡고 홍콩 최대 기업집단인 칭쿵그룹을 창업한 기업가입니다. 칭쿵그룹 지주사인 CK허치슨홀딩스 외에도 줌, 세노버스에너지 등 세계 여러 회사의 지분을 보유한 리카싱은 재산이 304억 달러에 이르는 홍콩 최대 부호입니다. 특히 닷컴 버블이 정점에 달했던 1999년 영국 모바일 통신사 '오렌지' 지배 지분을, 홍콩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고점을 찍기 직전이었던 2017년엔 홍콩 내 초고층 빌딩을 팔았습니다. 위기가 오고 난 뒤에나 알 수 있었던 '신묘한' 매도 타이밍이었습니다.
이 CK허치슨과 리카싱이 최근 월가에서 다시 주목받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고 주장하면서부터입니다. 파나마운하 항구 두 곳의 운영권을 CK허치슨이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CK허치슨은 이달 초 블랙록이 주도하는 미국 컨소시엄에 파나마운하 항구 운영회사 지분 90%을 넘기기로 했다가 중국 정부의 제동에 걸린 상태인데요. 올해 96세의 리카싱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인데도 이번 매각 협상엔 직접 참여하며 성사 의지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월가에선 리카싱이 이렇게 신속하게 항구 운영권을 넘기기로 한 배경이 무엇일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CK허치슨이 이번 거래에서 매각하기로 한 것은 파나마 운하 소재 항구 두 개뿐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홍콩과 중국 본토를 제외한 모든 항만 사업을 팔기로 했죠.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으로 인한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넘기는 것이라기엔 매각 범위가 크다는 겁니다.
회사 측은 수익성 때문이라고 했지만,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회사 항만 사업의 지난해 영업이익(EBIT)은 전년 대비 24% 늘었고 자동화에 따른 수익성 개선도 기대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항만 자산을 대폭 정리하려는 움직임은 더 큰 위기에 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관세 전쟁으로 글로벌 무역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와중입니다. 리카싱이 트럼프발(發) 무역 전쟁으로 전 세계 경기 둔화와 항만업 침체를 내다본 게 아니냐는 걱정이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단순 협상 수단이 아닌, 세수 확보와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한 무기로 쓴다면 이런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전후 80년 간 미국의 주도 아래 구축된 세계 자유무역 질서가 재편된다면 시장은 그 이상의 변동성도 각오해야 할 수 있습니다. 리카싱과 버핏은 이런 상황도 내다본 것일까요?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