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로 다시 뭉친 '한이박'…"인간과 비인간의 공존 고민했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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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이카' 창작진 인터뷰
'여신님'·'레드북' 이어 또 뭉친 '한이박 트리오'
"더 나은 인간에 대한 방향성·인간다움 생각"
"너무 큰 기대에 호불호 갈려…대중성 고민"
뮤지컬계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는 '한이박(한정석 극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가) 트리오'가 또 한 번 뭉쳤다. 2013년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시작으로 '레드북', '쇼맨'까지 합작해 온 이들은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라이카'는 인류 최초 우주 탐사견 라이카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1957년 소련이 발사한 스푸트니크 2호에 실린 개 라이카가 죽을 고비에서 가까스로 비켜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왕자'에 나오는 행성 B612에 불시착한다는 설정이다.
인간에 의해 우주로 버려진 라이카, 이후 행성에서 만난 어린왕자와 장미, 바오바브나무 등 비인간의 존재들을 통해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박소영 연출가는 "사실 인간답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아직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하지만 그 질문을 함으로써 조금 더 인간다울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대본을 쓴 한정석 작가는 대학 시절부터 라이카에 대한 일화를 알고 있었으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라이카 이야기에 '어린왕자'를 접목한 이유에 대해 "인간의 특성이 무엇일지 생각하는 와중에 막연히 '라이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우주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떠오른 외계 존재가 어린왕자였다"고 밝혔다.
이어 "어린왕자의 '길들이다'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더 친해진다는 의미다. 자연 상태보다 더 나은 걸 추구하도록 지도한다는 뜻을 활용하면 인간과 비인간이 존재하는 세계를 잘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행성 B612의 장미는 남성 배우들이 소화한다. 한 작가는 "원작이 여성이라서 고민했는데, '아름답다', '연약하다' 등의 표현을 이 시대에 여성 캐릭터가 쓴다면 전형성이나 대상화의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젠더리스까지 생각했다가 두 명씩 맞추는 게 운영하기 안정적이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어린왕자는 인간을 그리워하는 라이카에게 기존 주인 캐롤라인과 똑같이 생긴 로봇 로케보트를 선물해 준다. 동화 '어린왕자' 속 행성 B612에는 없었던, '라이카'에서 새로 탄생한 캐릭터다. 이와 관련해서 한 작가는 "어린왕자는 캐롤라인과 닮은 존재를 만들어서 라이카에게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또 아이러니하게 로케보트는 라이카의 비극을 발설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면서 "지구에서는 캐롤라인이 라이카를 챙겼다면, 우주에서는 라이카가 캐롤라인을 챙긴다. 역전된 둘의 관계성, 유대감 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선영 작곡가는 "한정석 작가가 생각하고 표현하려고 하는 걸 음악으로 잘 표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작업했다. 처음에는 이게 도대체 어떤 그림으로 무대에 올라갈지 상상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덕분에 오히려 마음껏 문을 열어놓고 작업했다"고 전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원시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다. 노래하는 존재들이 왕자만 빼면 장미, 바오바브나무, 라이카 등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장미의 아름다움 등 원시적인 느낌을 곳곳에 넣고 싶었다. 또 배경이 우주고 SF이지 않나. 로케보트 등을 고려해서 편곡할 때 신시사이저를 많이 쓰려고 했다"고 부연했다.
가장 큰 지적을 받는 건 어린왕자가 인간을 극도로 증오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한 작가는 "생텍쥐페리의 죽음이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우주에서 봤을 때 과연 인간의 행태를 긍정하며 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면서 "시련이 시련을 낳고 동화되듯이 환멸을 느끼는 게 짙어질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라이카가 새로운 행성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결말 또한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이지 않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서는 "모든 판타지가 결국은 인간의 현실이자 우리의 모습이고, 마지막을 아름답게 잘 살았다는 게 합리화이자 자기 위로인 걸로 보이길 바랐는데 그 부분이 조금 다르게 인식된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 작곡가는 "우린 인간이라서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어떤 존재를 이해한다고 한들 그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라서 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을 생각하는 데 의미를 두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한이박 트리오'에 대한 뮤지컬 팬들의 기대감이 높은 것과 관련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한 작가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공모전이 오래 걸렸고, '레드북'은 삼연 때부터 반응이 있었다. 우리 작품이 처음부터 흥행하진 않았다"면서도 "그래도 나쁜 말은 아니니까 굳이 정정하지 않는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어 "그래서인지 '라이카'는 초연부터 너무 많은 기대를 해주셔서 오히려 호불호를 낳게 되지 않았나 싶다. 뭐든 득과 실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라이카'는 나름 대중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더라. '라이카'의 대중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큰 숙제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작품은 오는 5월 18일까지 공연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