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미술의 역사 오롯이…'반세기 수장고'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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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55주년 특별전
지금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55주년: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는 한국 미술이 흘러온 시간을 한 번에 짚어볼 수 있는 반가운 전시다. 본관은 이중섭과 박수근·도상봉·임직순 등 한국 1세대 모더니스트를 주축으로 사실주의 양식의 구상회화 작가, 반추상 양식의 김환기·장욱진·이대원 등 ‘현대적 구상 회화’ 작가 24명의 작품 50여 점으로 라인업을 꾸렸다. 창업주인 박명자 회장이 아낀 작품들로 반세기 동안 쌓아온 수장고가 열린 것이다. 특별히 눈여겨보면 좋을 작품과 그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라일락: 한국적 정물화
도상봉은 현대화랑이 문을 연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총 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 유학을 통해 한국에 서양화를 들여온 1세대 서양화가다. 그는 고적하고 우아한 한국의 정서를 사실주의 회화로 확립했다. 특히 다소곳한 정물화가 유명한데, 전시에 나온 ‘라일락’은 이런 도상봉의 미학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다. 함께 걸린 풍경화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의외의 면모가 인상 깊다.못: 선명한 색채의 세계
홍익대 미대 학장과 총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을 지낸 이대원은 박명자 회장과 인연이 깊다. 박 회장이 미술에 눈을 뜬 장소인 반도화랑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현대적 색감과 토속적 정서를 동시에 갖춘 이대원은 1950~1970년대 한국 미술을 논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모노크롬, 미니멀리즘이 주류를 이루던 화단의 풍조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인 그림을 그렸다. 산과 들, 나무, 연못, 돌담 등 자연의 형태와 윤곽을 풍부한 원색과 과감한 붓 터치로 창조했다.산월: 뉴욕시대 이전의 형태
천재 화가, 한국에서 가장 비싼 작가, 추상미술 거장 등의 많은 수식어를 가진 김환기(1913~1974)를 설명하는 데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뉴욕시대’(1963~1974)다. 그의 추상미술이 정점을 찍은 시기이자 한국 현대미술사의 물줄기가 방향을 바꾼 분기점이란 점에서다. 그렇다면 김환기는 어떤 과정을 거쳐 ‘점의 세계’에 도달했을까. 전시에 나온 1957년 작 ‘산월’은 그가 온전한 추상을 구축하기 전 전통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던 단계를 보여준다. 산과 달, 구름, 나무 등이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추상적 표현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이 밖에 청회색조의 추상과 구상을 넘나든 권옥연(1923~2011), 우리 풍토와 체질에서 공감하는 회화를 추구하며 전국의 산을 그린 박고석(1917~2002), 민속 소재에 강렬한 색을 더한 채색화를 개척한 박생광(1904~1985) 등이 눈에 띈다. 일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한 박래현의 ‘새’(1956), 화려하고 장식적인 화풍이 돋보이는 김흥수(1919~2014)의 120호 대작인 ‘길동무’(1957)도 압도적인 기운을 준다.
유승목 기자 mok@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