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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영화 '더 폴'이 묻고, 베토벤이 답하다

영화 속 교향곡 7번 2악장 운명적
죽음 딛고 삶 긍정하는 서사 공통점

김수미 음악칼럼니스트
18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 ‘더 폴’의 주인공 로이는 하루아침에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린 인물이다. 영화는 로이가 사고를 당한 직후의 순간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흑백의 슬로 모션으로 아비규환의 현장이 펼쳐지는 가운데, 베토벤 교향곡 제7번 2악장이 묵묵히 흐른다. 이 곡이 정확히 어떤 의도로 선택됐는지 알기 어렵지만, 나는 이 조합이 운명적이라고 느껴졌다. 베토벤 역시 로이처럼 삶의 의미를 잃고, 유서를 쓴 적 있기 때문이다.

청력 상실은 베토벤이 겪은 가장 큰 시련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두려워한 것은 사회적 고립이었다. 온갖 치료법을 시도했지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요양차 머문 하일리겐슈타트에서 그는 결국 유서를 쓴다. 그런데 이 유서가 조금 특이하다. 두 동생에게 자신의 절망을 토로하며 시작된 편지는 차츰 운명을 받아들이고 삶의 사명을 또렷하게 발견하는 내용으로 바뀌어 갔기 때문이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는 절망의 기록이 아니라, 아직 쓰지 못한 음악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담은 전환점이 됐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베토벤의 창작열은 더욱 뜨겁게 타올라, 그의 대표작 대부분이 유서 이후에 탄생했다. 그가 이 시기에 완성한 작품은 교향곡 제2번이지만, 당시 그가 겪었을 심정적 변화를 가장 닮은 곡은 제7번 2악장이라고 생각한다. 곡에서 반복되는 ‘장-단-단-장-단’의 장송 행진곡 리듬은 어두운 긴장감을 자아내는데, 드라마틱한 격랑을 지나 장조로 전환되면서 음악의 에너지는 온화하고 견고한 기쁨으로 변환된다. 이후 다시 초반의 리듬이 반복되지만, 이는 죽음의 그림자가 아니라 죽음에 맞서는 엄숙한 용기처럼 들린다.

영화 ‘더 폴’의 로이도 비슷한 여정을 겪는다. 걷기는커녕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사치인 그에게는 죽음을 택하는 일마저 버겁다. 그런 그의 앞에, 팔을 다쳐 입원한 꼬마 알렉산드리아가 나타난다. 로이는 순진한 아이를 꼬드겨 모르핀을 얻어낼 속셈으로 매일 이야기를 들려주며 가까워진다. 병원 생활이 따분하기만 했던 알렉산드리아는 로이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푹 빠진다. 아이의 지루함은 상상력의 자양분이 되고, 그는 로이가 들려주는 모험 속에 자신이 아는 얼굴들을 끼워 넣는다. 총독 ‘오디어스’에게 추방당한 다섯 인물의 복수극에서 로이는 블랙 밴디트, 알렉산드리아는 그의 딸로 등장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를 통해 모르핀을 얻으려던 계획이 실패하자 로이는 절규한다. 그 모습을 본 알렉산드리아는 그를 기쁘게 해줄 생각으로 약을 훔치려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만다. 머리 수술을 받고 막 깨어난 아이에게 로이는 눈물을 흘리며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데, 알렉산드리아는 이야기를 마저 들려달라며 천진난만하게 조를 뿐이다. 로이는 자기 마음속 어둠을 고스란히 담아 결말을 써 내려간다. 이야기 속 인물들이 하나둘 죽고, 블랙 밴디트마저 힘없이 쓰러진다. 그러나 곁에서 간절하게 애원하는 알렉산드리아 때문에 그는 마음을 바꾼다. 무기력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던 블랙 밴디트가 온 힘을 다한 한방으로 역습에 성공하고, 겁에 질려 흐느끼는 딸(알렉산드리아)에게 달려가 안아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맺는다. 이는 로이의 변화된 내면을 고스란히 비춘다. 그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가 자라난 것이다. ‘더 폴’과 베토벤 음악의 조합은 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죽음밖에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진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맞물린다는 점에서 절묘하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생을 더욱 명료하게 불러내는 결말은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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