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돌아온 약탈 유물을 대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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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호메이' 리뷰
2024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약탈 문화재 반환으로 촉발되는 논의 다뤄
“인디아나 존스의 시대는 끝났다”. 최근 수년간 서구의 화두 중 하나는 과거 약탈했던 식민지·약소국 문화유산의 반환이다. 18~20세기 제국주의와 함께 꽃피웠던 ‘모험가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각지에서 긁어모은 보물로 문화적 풍요로움을 독식한 값을 치를 때가 됐다는 것. 영국은 이라크에 명목상 빌렸던 6000여 점의 문화유산을 돌려줬고, 미국은 2300년 전 고대 이집트 왕조의 ‘녹색관’을 반환했다.
문화유산하면 빠질 수 없는 프랑스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17년 아프리카 문화유산의 반환 의사를 표명했고, 4년 후 아프리카 서부의 베냉 공화국에 약 130년 전 약탈한 당시 다호메이 왕국의 유물 26점을 돌려줬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파리의 케 브랑리 국립박물관 수장고에서 조각상 등 다호메이의 주요 유물이 나와 베냉의 아보메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과정을 그린다.
러닝타임 68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영화적 재미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시선을 끄는 연출이 있다면 문화유산의 시점으로 보는 여정이다. 반환된 보물 중 하나인 게조 왕의 목제 조각상을 유물의 화신(化神)처럼 의인화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친 쇳소리로 “내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 두렵다”고 읊조리는 조각상은 100년 넘게 ‘수장 번호 26번’으로 불리느라 잊어버린 정체성, 자신의 처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전한다. 물론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유리창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는 건 또 다른 아이러니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은 반환된 유물을 놓고 벌이는 베냉 대학생들의 열띤 토론이다. 영화가 단순히 문화적 관점에서 유물을 반환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베를리날레의 선택을 받을 만큼 정치적 함의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유물 반환이 신문 1면에 ‘역사적인 순간’으로 장식되지만, 사실 그 이면은 복잡하다. 제국주의로 새겨진 상처는 약탈당한 유물 몇 점의 반환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분명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 불만은 자연스럽게 베냉 공화국 정부와 지도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제한적인 반환을 두고 ‘역사적인 장면’이라 내세우는 정부와 가난한 국민과 달리 화려한 차림새로 전시장에 등장하는 고위층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일부 베냉인들은 유물의 반환이 단순한 상징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서구 중심의 교육에 치우쳐 있던 문화 정체성 회복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게조 왕의 목조상은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는 게 베냉의 현실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논쟁들은 그리 낯설지 않다. 국외 소재 문화유산의 환수에 대한 뉴스를 한국에서도 자주 접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적잖은 메시지를 준다. 영화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최근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아트나인, 영화의전당이 공동으로 진행한 ‘2025 프랑스 영화 주간’을 통해 서울과 부산에서 상영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지만, 조각상은 조각상일 뿐이다. 과거의 것을 되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미래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봤던가.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