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파월에 "Mr. Too Late"…관세 정책 실패 떠넘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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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發 경제 타격…'파월 책임론' 연일 불지펴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미스터 투 레이트(Mr. too late·늑장쟁이)”라고 비난하며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최근 파월 의장 해임 가능성을 거론한 데 이어 또다시 ‘파월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Fed의 독립성과 금융시장 충격을 무시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을 몰아붙이자 시장에선 관세 정책 실패에 따른 경기 침체에 대비해 파월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장 금리 안 내리면 침체 온다"
금리 인하 요구 강도 점점 세져
관세 부작용으로 물가 뛰면
'파월이 금리 제때 안 내린 탓'
Fed에 화살 돌리려는 포석
차기 의장 조기 지명 가능성도
해임 대신 권한 무력화 노려
◇트럼프 연일 “문제는 파월”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SNS를 통해 파월 의장을 ‘늑장쟁이’ ‘중대 실패자’라고 지칭하며 “지금 당장 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면 경기 둔화가 닥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미국 물가와 관련해선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이 실질적으로 하락했고, 다른 품목도 대부분 하향세를 보이고 있어 사실상 인플레이션은 없다”고 강조했다. 금리 인하 여건이 충분히 마련됐는데도 Fed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트럼프 대통령의 잇따른 압박은 조기 금리 인하를 유도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관세에 따른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Fed가 기준금리를 내려 시장 급락을 방어하는 ‘Fed 풋’이 필요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Fed는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로 기준금리 인하와 관련해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 17일 “일시적인 가격 상승이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파월의 임기는 빨리 종료돼야 한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과 관련해 파월 의장을 해임하려는 의도라기보다 경기 둔화 책임을 Fed에 전가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향후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등 관세의 부작용이 현실화하면 ‘Fed가 적기에 금리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미리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신의 정책 실패에 대한 ‘희생양 만들기’인 셈이다. 팀 듀이 SGH매크로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정책으로 인한 경제 타격의 책임을 Fed에 전가하려 하고 있다”며 “‘내 계획은 완벽했어, 파월만 방해하지 않았다면 말이지’라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림자 의장’ 세워 ‘레임덕’ 만드나
파월 의장 해임이 법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파월 의장은 16일 “우리는 정당한 사유 없이 해임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Fed와 비슷한 독립기구인 국가노동관계위원회(NLRB) 위원을 물러나게 한 사례를 언급했다. 이 사건은 1심에선 위법 판단이 나왔지만, 이후 항소심은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대통령이 독립기관 수장을 해임하는 게 정당한지에 관한 법적 논란은 여전하다. 파월 의장은 “그 판결이 Fed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트럼프 행정부가 차기 Fed 의장을 조기 지명해 ‘그림자 의장’ 체제를 가동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파월 의장을 해임하지 않고도 차기 의장에게 실질적 권한을 부여해 임기 만료 전 ‘레임덕’ 상태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파월 의장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전문가들은 행정부가 Fed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 자체가 시장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크리슈나 구하 에버코어ISI 부회장은 이날 CNBC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그림자 의장을 세워 파월을 압박하는 것은 백악관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파월을 그대로 둬야 기대 인플레이션과 채권 금리가 안정적으로 유지돼 Fed가 시장 충격 없이 금리를 조정할 최적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다연 기자 allopen@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