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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숨은 미로...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

[arte] 김선경의 미술관이 던지는 질문들

네덜란드 로테르담 박물관 공원의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
'미술관은 이 많은 작품을 어디에 어떻게 보관할까?' 방대한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에 가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래된 그림을 어떻게 멀쩡하게 보존하는지도 궁금하기 마련이다.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공간이 있다. 바로 네덜란드 로테르담 박물관 공원에 있는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Depot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이다.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 / 사진. ©Ossip van Duivenbode, 출처. 건축사무소 MVRDV 홈페이지
이 수장고는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장고와 마찬가지로 박물관 공원에 자리 잡은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은 역사가 길다. 미술관은 1849년에 변호사이자 미술 애호가인 프란스 보이만스(Frans Jacob Otto Boijmans)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반에 미술관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사업가이자 컬렉터인 다니엘 판 뵈닝언(Daniël George van Beuningen)이었다. 그는 큰 후원금을 낸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컬렉션까지 기증했다. 판 뵈닝언은 세상을 떠나면서 유산을 미술관에 남겼다. 그 이후 미술관은 가장 큰 후원자 두 명의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얼핏 들었을 때는 아름다운 이야기 같다. 그러나 미술관에 붙은 판 뵈닝언 이름은 논란이 됐다. 그의 컬렉션 일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강탈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후원자를 기리고자 했지만 역사는 그를 다르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관은 2019년부터 대대적으로 건물 보수 공사를 시작했다. 2030년에야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다행히 공사 기간에도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에서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021년에 공식적으로 문을 연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는 세계 최초의 전면 공개형 수장고이다. 개관식에는 네덜란드의 국왕 빌렘 알렉산더르(Willen-Alexander George Ferdinand)가 참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장고 설립은 네덜란드 미술계 전체가 관심을 갖는 사업이었다. 사실 미술관은 그전에도 수장고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겪은 사고 때문에 수장고를 새로 지었다. 해수면 보다 낮은 기존 수장고가 2013년에 홍수로 침수한 것이다. 새로운 수장고 설립은 단순히 작품 손상만을 걱정해서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미술관은 관람객이 전체 소장품의 단 6~8%만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전면 공개형으로 수장고를 설계했다.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 / 사진. ©Ossip van Duivenbode, 출처. 건축사무소 MVRDV 홈페이지
수장고 건물은 네덜란드의 건축사무소 MVRDV가 설계했다. 건물 외벽에는 도시 풍경을 그대로 반사하는 유리 파사드가 있다. 이 파사드는 찻잔 같은 모양이다. 외벽은 하늘과 구름을 비춘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같은 다양한 장면도 담아낸다. 수장고 건물 자체가 로테르담 도시를 비추는 큰 거울 조각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시 풍경을 반사하는 외벽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포착하는듯한 느낌도 준다. 이는 수장고가 위치한 박물관 공원의 특징과 어울린다. 박물관 공원은 이름 그대로 여러 박물관이 모여 있는 문화 복합 지구이다. 시민이나 관광객은 공원을 산책하다가 자연스럽게 박물관에 들른다. 혹은 반대로 박물관을 구경한 뒤 자연스럽게 산책을 하게 되거나.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다.
[위]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 [아래]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의 건물 외벽 / 사진. ©Ossip van Duivenbode, 출처. 건축사무소 MVRDV 홈페이지
수장고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천장까지 뻗은 커다랗고 긴 직사각형 기둥을 마주한다. 이 기둥은 강철유리로 만든 투명한 진열장이다. 실내에는 이런 진열장이 열세 개나 있다. 수장고는 진열장 속 컬렉션을 주기적으로 바꾼다. 투명한 진열장은 컬렉션이 건물 안을 떠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부 인테리어를 맡은 마리커 판 디멘(Marieke van Diemen)은 관람객이 정해진 동선 없이 자유롭게 관람하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수장고를 마치 미로처럼 설계했다. 판 디멘이 의도한 것은 움직이며 출구를 찾아 헤매는 물리적 미로가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고 방향을 잃어버리는 정신적인 미로였다. 보통 미술관은 관람객의 동선을 안내하고 계획한다.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는 그 반대이다. 관람객은 미로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듯한 컬렉션 사이에서 스스로 작품을 발견하고 능동적으로 동선을 만들어낸다.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의 내부 / 사진. ©Ossip van Duivenbode, 출처. 건축사무소 MVRDV 홈페이지
수장고가 가진 매력 중 하나는 지그재그 모양으로 놓은 계단이다. 해리포터의 마법학교나 영화 인셉션의 꿈속 장면을 연상하게 만든다. 관람객은 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끊임없이 시점을 바꾸게 된다. 다른 높이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컬렉션을 관람하게 되는 것이다. 수장고에 방문했을 때 나는 여러 층에 걸쳐 길게 설치한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작품을 계단에서 계속 마주쳤다. 처음에는 투명 진열장 안에 있는 상자와 의자 그리고 까치발을 한 인간 모형 조각의 하반신만 눈에 들어왔다. 작품이 특별하게 시선을 사로잡지 않아서 무심코 작품을 지나쳤다. 하지만 높은 층에 올라갔을 때, 조각이 관람객을 향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카텔란이 스스로를 모델로 삼았다는 이 작품은 자신을 바라보는 관람객을 장난스럽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수장고의 구조적 특징을 재치 있게 살린 작품 배치였다.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에 전시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 사진. ©김선경
수장고는 유리 진열장 속 작품을 세세한 설명 없이 전시한다. 물론 수장고 자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정보를 확인할 수는 있다. 그래도 번거로움을 무릅쓰지 않는 한 관람객은 작품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없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용도가 아니다. 작품 설명은 관람객이 작품을 여러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감상의 발판이다. 그러나 가끔은 작품 제목과 작가에 대한 정보가 오히려 감상을 틀 안에 가둘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미술관과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보여주는 이 수장고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 셈이다. 설명이 없는 전시방식이 관람객을 더 자유롭게 만들까? 아니면 작품을 다채롭게 관람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까?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는 보존 조건과 재료에 따라 분류하여 작품을 보관한다. 회화, 금속, 유기물, 무기물, 흑백 및 컬러 사진 등 다양한 작품을 열네 개 구역에 나누어 놓았다. 관람객은 작품 보존과 복원 과정을 직접 관람할 수 있다. 투명한 복원 스튜디오 유리창 너머로 복원가가 섬세한 손길로 작품의 먼지를 털고 색을 복원하거나 손상된 부분을 보완하는 장면을 지켜볼 수 있다. 미술관의 백스테이지를 엿보는 경험이다. 공개형 스튜디오는 수장고가 단순히 작품을 보관하는 공간이 아니라 작품이 살아 숨 쉴 수 있게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연구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는 보존 조건, 재료에 따라 작품을 분류 및 보관하며, 관람객은 작품 보존과 복원 과정을 관람할 수 있다 / 사진. ©Ossip van Duivenbode, 출처. 건축사무소 MVRDV 홈페이지
올해 초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에 방문했을 때 《Beloved》 전시가 있었다. 이는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 설립 17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전시에서 관람객이 투표로 선정한 컬렉션을 관람할 수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금지된 재현 La Reproduction Interdite>(1937)과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의 <바벨의 탑 The Tower of Babel>(1568) 등 시대를 넘어 사랑받은 작품을 포함했다. 《Beloved》는 단순한 175주년 축하 전시가 아니었다. 예술작품은 관객과 함께 할 때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보여준 전시였다. 예술작품은 누군가 감상할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는 예술 작품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그것을 보존하고 감상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보이만스 판 뵈닝언 수장고의 내부 / 사진. ©김선경
김선경 미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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