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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자신의 무덤에 저주를 건 이유

[arte] 박효진의 이상한 나라의 그림책

수백 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

인간의 삶과 본성을 파헤쳐 이야기로 담아내
죽는 순간까지 마녀, 미신을 믿기도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햄릿(Hamlet)』 3막 1장

“Out, out, brief candle! Life’s but a walking shadow….”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이여! 인생은 그저 걷는 그림자일 뿐….
- 『맥베스(Macbeth)』 5막 5장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re)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들이다. 어린 시절, 그의 작품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우리는 TV 광고나 개그,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이 대사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곤 했다. 그렇다면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수백 년 동안 세대를 초월해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남을 수 있었을까?
윌리엄 셰익스피어 / 그림출처. 위키피디아
이야기는 시골에서 자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이하 ‘윌’)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통치하는 튜더 왕조(Tudor Dynasty) 시대인 1564년,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윌은 장갑을 만드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가죽을 부드럽게 처리하는데 필요한 소변을 모으러 마을을 다니기도 했다. 그의 하루는 대부분 학교와 들판, 두 곳을 오가며 흘러갔다. 가난한 시골 마을의 학교에서는 미술, 체육, 역사, 과학 등의 수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라틴어 한 과목만이 존재하는 학교에서 윌은 매일 무려 11시간씩 수업을 듣곤 했다.
셰익스피어의 생가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14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시골 소년이 어떻게 최고의 희곡들을 쓸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윌의 모든 작품은 ‘삶’과 ‘인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었으며, 인간의 존재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고민했다. 사랑, 죽음, 질투, 두려움, 희망, 웃음, 복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감정들을, 그는 재치 넘치는 언어유희와 함께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떠올리게 된다. 70년간의 애순과 관식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공감하고 감동하게 된다. 그 작은 시골 마을에서의 애순이와 관식처럼 사람들은 삶을 견디고, 사랑하고, 기다리고,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본질과 존재 이유를 담담히 담아내고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들여다본 것들과 동일한 것들이었다. 셰익스피어가 무대 위에 올려놓은 희로애락은 지금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사진출처=넷플릭스
22년 2개월 동안 방영된 한국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또한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20여 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고 평범한 시골의 일상을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를 깊이 있게 전해준다. 사랑과 갈등, 화해,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한국판 셰익스피어극이었다.
드라마 &lt;전원일기&gt; / 사진출처. MBC
이야기는 늘 사람이 있는 곳에서 시작되고 자라난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유년 시절 또한 이야기도 가득 차 있다. 그는 저녁이면 가족과 집 안 벽난로 앞에 둘러앉다 ‘아서 왕’과 ‘로빈 후드’와 같은 전설과 민담, 중세 이야기들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를 둘러싼 여러 환경 속에서 윌은 삶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조금씩 키워나갔던 것은 아닐까.

셰익스피어와 어둠의 마녀들

윌은 18세에 8살 연상인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떠나 런던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그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윌은 모든 사람이 열광할 만한 이야기를 썼다. 어른과 아이, 부자와 가난한 자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연극을 선보이기 위해 고심했다. 그 고심의 결과로 ‘lonely’, ‘hurry’, ‘fashionable’ 등 약 1700개의 영어 단어가 그의 작품을 통해 처음 등장하거나 알려지게 되었다. 어쩌면 이는 어린 시절 매일 11시간씩 배우던 라틴어 수업의 효과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윌은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숨어 있는 본성을 파내고 또 파내었다. 거의 모든 희곡에서 등장인물들을 죽음으로 이끌었고, 사랑과 질투, 야망, 죄책감, 배신, 용서 등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파헤쳤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알려진 햄릿(Hamlet), 오셀로(Othello), 리어왕(King Lear), 맥베스(Macbeth) 이외에도 그의 많은 작품이 비극의 결말로 끝이 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비극뿐만이 아닌 어둠의 마법과 마녀들의 기운도 가득하다. 윌이 살던 시대 사람들은 미신에 열광적이었다. 마녀를 탓하고, 악령을 두려워하고, 별과 행성이 삶을 조종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맥베스(Macbeth) 속 마녀의 등장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스코틀랜드 제임스왕(오른쪽에 앉아 있는 인물)이 마녀 고문을 감독하는 장면(1591년) / 그림출처. Wtm.uk
윌의 미신에 대한 믿음은 죽는 순간에도 계속된다. 도굴꾼들이 자신의 뼈를 파내는 것을 걱정해서, 묘비에 저주를 새기기도 했다.

Good friend for Jesus' sake forbear,
To dig the dust enclosed here.
Blessed be the man that spares these stones,
And cursed be he that moves my bones.
이 돌을 건드리지 않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며,
내 뼈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2008년, 윌의 무덤이 위치한 홀리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를 수리할 당시, 교회 관계자들과 고고학자들은 셰익스피어의 무덤을 조사하는 대신 그의 유골을 방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윌의 저주는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셈이다.
셰익스피어의 무덤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장식 없는 무덤과 이름만 적힌 묘비’

며칠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보도를 접했다. 셰익스피어의 ‘저주의 묘비’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언 없는 묘비’는 언뜻 상반되어 보이지만, 죽음에 대한 인간 본성의 저변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함이 느껴진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도 인간은 여전히 셰익스피어가 전하는 이야기와 믿음, 그리고 미신의 힘 앞에서 한발 물러선다. 그것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희곡을 살아 있는 현재의 삶과 동일한 존재로 대하는 마음, 그 위대한 작가의 이름에 깃든 경외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희곡 안에서 수많은 인물을 살리고 죽였으며, 그의 인생 마지막 장에서는 자신마저 저주의 무덤에 올려 영원한 관객과 마주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건네는 셰익스피어의 첫 이야기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갈등과 화해, 인간의 모든 내면을 이야기로 풀어낸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정성스레 포장해 선물할 생각에 설레는 마음처럼 아이들에게 셰익스피어를 소개하는 일은, 설레는 일이다. 내가 그의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선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감정과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며, 때로는 함께 고뇌하는 경험을 나눌 수 있다.

그의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이제 아이들의 손에 조심스럽게 건네줄 차례다.
[좌]『윌리엄 셰익스피어』 / 사진. ⓒ시공주니어, 출처. 예스24 [우]『한여름 밤의 셰익스베어』/ 사진출처. ⓒ북극곰
[좌]『셰익스피어와 글로브 극장』 / 사진출처. ⓒ미래M&amp;B [우]『한 권으로 읽는 위대한 이야기 12편』/ 사진출처. ⓒ미래N아이세움
박효진 길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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