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세포를 암으로 유도…신개념 항암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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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미국암연구학회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세계 3대 암 학회로 꼽히는 ‘미국암연구학회’(AACR 2025)에 총출동했다. 셀트리온을 비롯해 한미약품, 유한양행, 아이디언스, 한독 등이 신약 연구개발(R&D) 성과를 앞다퉈 공개했다. AACR은 신약 개발 초기 단계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시험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셀트리온, 항암 신약 성과 공개
유한양행 이중항체 신약
한미약품 표적항암제도 주목
◇더욱 뜨거워진 HER2 시장
셀트리온은 27일(현지시간) 미국 신약 개발사 에이비프로와 공동으로 개발 중인 T세포 인게이저(TCE) ‘CT-P72’의 연구 성과를 이번 AACR에서 처음 공개했다. TCE는 강력한 면역세포인 T세포를 암세포와 연결해 T세포가 직접 암세포를 공격하게 만드는 면역항암제다. CT-P72는 유방암과 위암 조직에 흔한 HER2 단백질에 달라붙어 T세포를 불러들인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세포실험과 동물실험에서 CT-P72의 꾸준한 항암 효능을 확인했다”며 “특히 영장류 독성시험에서 경쟁 물질 대비 180배 우수한 안전성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셀트리온이 비교약물로 설정한 로슈의 ‘루니모타맙’은 개발이 중단된 상태다. CT-P72보다 앞서 개발 중이던 유력 경쟁자가 사실상 사라져 ‘혁신신약’(퍼스트 인 클래스)의 가능성도 커졌다. 관건은 CT-P72가 이 시장의 강자 ‘엔허투’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다. HER2 치료제 시장은 암세포에만 항암제를 유도탄처럼 보내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엔허투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한미약품은 엔허투 치료에 실패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신약 후보물질 ‘HM100714’의 전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보인 암은 물론이고 뇌로 전이된 암에서도 효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엔허투가 뇌 전이 환자에 대한 명확한 치료 효과를 입증하지 못해 HM100714의 시장 경쟁력에 거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유한양행과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신약후보물질 ‘YH32367’의 1상 임상 결과를 공개했다. 치료가 어렵고 생존 기간이 짧은 담도암 환자 등에게서 유의미한 효능을 보여 시장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K바이오, ‘혁신신약’에 본격 도전
혁신신약은 경쟁자가 없는 만큼 개발 난도도 높아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분야로 꼽힌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그동안 패스트 팔로 전략에 집중했지만 산업이 성숙하면서 혁신신약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일동홀딩스 자회사 아이디언스는 암의 뿌리 역할을 하는 암줄기세포를 겨냥한 항암제 ‘ID12023’을 발표했다. 암줄기세포는 항암 치료 후에도 살아남아 암을 재발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암줄기세포를 직접 겨냥하는 항암제는 아직 출시된 사례가 없다.
한독은 기존 기술로는 치료가 어려운 암 돌연변이를 겨냥한 신약 후보를 발표했다. 췌장암과 대장암을 일으키는 KRAS G12D 변이는 기존 신약 개발 기술로는 약을 만들 수 없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한독은 발암 단백질인 KRAS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KRAS 단백질 자체를 분해하는 ‘표적 단백질 분해제’(프로탁)로 접근 중이다. 현재까지 시판된 프로탁 약물은 없다.
이우상 기자 idol@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