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조세 리더로 떠오른 EU…한국의 대응은? [광장의 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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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마다 다른 직접세 조화 노력 본격화
제도 형성 초기부터 개입하는 ‘선제대응’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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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U 단일시장에도 미완의 과제가 있다. 바로 직접세 분야의 조화 혹은 통일이다. 조세는 각국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EU 회원국들은 과세 자율권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이 자율권은 단일시장의 핵심인 상품·서비스·인·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설립의 자유, 즉 ‘차별금지 원칙’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보장된다.
조세정책에서 EU의 역할 확대...아일랜드 사례 '주목'
EU 조약에 따르면 직접세 관련 EU 법제는 회원국 장관회의인 이사회가 '지침 형식'으로 만장일치 합의해야 하며 각국은 이를 자국 법에 반영해 시행한다. A 분야에 대해 세금 회피를 방지하는 법을 만들라"는 지침이 나오면 독일·프랑스 등 각국이 각각 입법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다. BEPS(세원잠식과 소득이전) 프로젝트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모자회사 지침, 이자·사용료 지침 등 6개 지침 정도만 조세 지침으로 존재했으나 BEPS 이후 단일시장의 조세 조화 국제조세회피 방지, 조세행정 협조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지침들이 제정되며 큰 폭으로 늘어났다.EU 내 국가는 그 수만큼이나 경제 구조와 조세정책 접근방식도 다양하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처럼 전통 산업국 중심의 대국도 있지만, 네덜란드·아일랜드·룩셈부르크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는 조세경쟁을 통해 기업과 자본을 유치해왔다.
그러나 2024년 9월, 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아일랜드 정부가 애플에 유리한 조세예규(tax ruling)를 제공해 국가보조금을 지급했다는 EU 집행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한 1심 판결을 뒤집고 아일랜드가 애플로부터 약 140억 유로(이자 포함 약 20조 원)를 환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EU 역내 국가 간 조세경쟁이 경쟁을 왜곡하고 결국 단일시장의 유지와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EU 사법부의 판단이자 경고이다.
사실 EU는 1997년 OECD의 유해조세경쟁 방지 논의 개시와 같은 시기에 역내 유해조세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별도의 회원국 간 협의체를 두고 서로의 제도를 감시해 왔다. 내부 유해조세 점검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EU는 외부로 관심을 돌려 역외 국가들의 유해조세제도를 점검하기 시작하였다. 이 여파로 2017년 12월, 우리나라의 조세특례제한법상 외국인투자 조세감면 제도가 EU 기준에 맞지 않는 유해조세제도로 판정돼 ‘조세비협조국가(블랙리스트)’에 포함됐고, 결국 2018년 12월 정기국회에서 해당 제도가 폐지됐다.
글로벌 조세 스탠다드 설립하는 EU
그만큼 EU의 국제조세 분야 영향력은 미국 못지않게 강력하다. 따져보면 국제조세 규범논의를 주도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8개 회원국 중 22개가 EU 국가들이다. 글로벌 최저한세(필라 2)는 EU가 선제적으로 입법했고 다국적 IT기업의 매출에 일정한 원천징수세를 매기는 디지털서비스세도 EU 국가들이 먼저 입안했다.최근 EU 집행위원회는 각 회원국의 법인세율은 그대로 두되 역내 법인세 공통과세표준를 도입하고 매출 등 지표를 반영한 일정한 공식에 따라 이를 각국에 배분하는 법인세 개혁안(지침안) 을 제안했다. 이는 법인세 체계를 단순화해 조세가 단일시장의 장벽이 되는 것을 막고 기업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다. 동시에 역내 조세경쟁을 억제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안은 낮은 법인세율로 다국적기업 본사를 유치해온 아일랜드 등 일부 회원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들 국가는 공통과세표준이 실질적으로 법인세 부담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하며 개혁안 수용에 난색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EU 조약은 직접세 분야 지침을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제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조세 개혁은 종종 정치적 타협에 머무르거나 합의가 지연되는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만장일치제를 가중다수결로 전환하자는 논의도 제기됐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진전은 없다. 바로 여기에 EU 단일시장이 가진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국내 조세 실무의 시사점?
EU 단일시장은 국내 국제조세 실무의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높은 구매력을 지닌 진출시장으로서의 중요성이고 국제조세 규범의 형성자로서 우리 기업과 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이다.과거에는 EU 조세법이 우리 기업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례가 드물었지만 최근에는 조세회피방지지침(ATAD), 국가별보고서 공개 등 역외기업도 이행 부담을 지는 제도가 속속 도입되고 있다. 또한 앞서 말한대로 우리나라가 EU의 조세비협조국으로 지정되고 세법 개정으로 해제되는 과정에서 EU의 영향력을 몸소 체험한 바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EU의 국제조세 환경에 대해 우리 기업과 정부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제도 입안 단계부터 관심을 갖고 그 파장을 면밀히 분석하며 선제적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김정홍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 김정홍 변호사는
기획재정부(세제실), 대법원(조세조 재판연구관) 및 국제기구(OECD 대한민국정책센터) 등 다양한 공직에서 국제조세 등 세제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온 변호사로서 2021년부터 광장에 합류하여 인바운드 및 아웃바운드 국제거래 전반에 관한 국내세법, 조세조약, 이전가격 등 분야의 자문 및 대응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이며, 저서로 국제조세법(공저, 제3판, 박영사)과 국제조세분야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