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전면 재개됐지만…거래소, 시장조성자엔 '금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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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공매도 재개 후 물량 대거 출회 우려
증권가 "시장 일각 공매도 반감 의식한 조치"
시장조성자, 헤지 수단 막혀 손실 위험 확대
거래소 "공매도 거래대금 줄면 허용할 것"
"업무 협조 점수 감점"…거래소 증권사에 '공매도 자제령'
21일 한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지난 3월 말 공매도를 전면 재개한 후에도 증권사 파생상품 시장조성자는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거래소가 공매도에 대한 시장 일각의 반감을 의식해 재개 직전 증권사 시장조성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공매도 자제령'을 내리면서다. 거래소는 공매도 시 업무 협조 점수에서 감점하는 내용의 운영 방침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앞서 금융위는 2023년 11월 불법 공매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면 금지 조치를 시행했을 당시 유동성공급자(LP)와 시장조성자에겐 예외적으로 공매도를 허용했다.
하지만 거래소가 당시 명확한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장조성자들에 공매도를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주식옵션에 대한 공매도를 일부 허용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들어 시장조성 운영 방침에 공매도 시 업무 협조 점수를 감점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면서 사실상 공매도를 금지했다.
또한 거래소는 지난 3월에도 공매도가 재개되기 전 시장조성자에게 기존의 방침을 유지한다는 내용의 안내를 전달했다는 게 업계 복수 관계자의 설명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장조성자들은 사실상 매도 수단이 막힌 상태이기 때문에 선물 거래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며 "거래소가 공매도를 하면 업무 협조 점수에서 감점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보니 다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매도가 전면 재개되면서 그간 억눌렸던 (공매도) 물량이 한 번에 풀려 시장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내린 조치"라며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공매도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조성자에 당분간 자제할 것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조성 업무 사실상 마비" 토로
금융투자업계에선 "거래소가 개인투자자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에 시장조성 업무가 사실상 마비됐다"며 불만을 토로한다.시장조성자는 차익 목적보다 주로 헤지 수단으로 공매도를 활용한다. 이들은 거래소와 서로 지정한 종목에 대해 매수·매도 양방향으로 주문을 넣어 호가 스프레드(차이)를 줄이고 가격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때 현·선물을 매수·매도하는 방식으로 시장조성에 나서는데 보유 잔고가 없으면 차입을 해야 한다. 문제는 거래소가 공매도를 계속 제한하면서 시장조성자의 매도가 어려워졌고 시장조성 과정에서의 손실 위험만 확대됐다는 점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시장조성 과정에서 선물을 사면 당연히 현물을 팔아야 하는데 공매도가 제한돼 있어 매도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졌다"며 "거래소는 공매도 거래량이 늘어나면 외부 시선이 좋지 않을 것을 우려해 제한했고 벌써 두 달가량이 흘렀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그간 개인과 기관의 상환 기간·담보비율을 통일하는 등 공매도 제도를 재정비했고 불법 거래를 적발하기 위한 중앙점검시스템(NSDS)도 도입했다. 공매도가 전면 재개된 상황에서 또다시 관련 문제가 불거질 경우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 내부적으로 시장 조치를 강화한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거래소는 공매도 거래대금이 줄어들고 시장이 안정화됐다고 판단되면 자제령을 풀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공매도 거래대금은 전면 재개 이후 점차 감소 추세다. 이달 14일부터 전날까지 5거래일간 유가증권시장 공매도 거래대금은 2조5162억원으로 집계됐다. 공매도 재개 첫째주(4조7584억원)와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47.12%) 줄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확답할 수 없지만 안정적일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며 "공매도 거래대금이 점점 줄고 있기 때문에 (재개 시점도)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