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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의 키스와 불멸의 재능...예술은 남고 예술가는 사라진다

[arte] 오동진의 굳세어라 예술영화

안느 퐁텐 감독 영화

예술적 성취란 무엇인가..
'자기 확신'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모리스 라벨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예술이지만
늘 행복하지 못한 예술가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예술을 하는가
북유럽 룩셈부르크 출신으로 프랑스와 전 유럽, 심지어 미국을 오가면서도 영화를 찍는 안느 퐁텐은 다소 해괴한 감독이다. 활동 범주가 넓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만드는 영화들의 장르, 스타일, 내용과 주제가 천차만별, 종횡무진이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두 엄마가 각각 상대의 아들과 성관계를 맺는 영화 <투 마더스>를 찍었다. 이거 무슨 포르노그래피야, 하겠지만 칸(마켓)에서 상영됐고 나오미 왓츠와 로빈 라이트라는 굴지의 할리우드 여배우가 나왔다. 그런 안느 퐁텐은 이전엔 <코코 샤넬>(2009) 같은 사극을 만들었고 또 <마담 보봐리>(2015) 같은 여성주의 영화도 만들었으며, 2017년에는 그 유명한 <아뉴스 데이>를 만들었다. 2차 대전 직후 폴란드의 한 수녀원에서 수녀들이 집단으로 임신을 했고 그 출산을 돕는 여의사 얘기다.
영화 &lt;아뉴스 데이&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안느 퐁텐은 참담한 역사극을 영화로도 만들었다는 얘기이고 나름 역사의식이 투철한 인물이라는 얘기이다. (얘기일까?) 안느 퐁텐의 최근작은 <스노우 화이트> <프레지던츠> <폴리스> 등 잔혹 동화극부터 정치물, 액션영화까지 있다. 한 마디로 잡탕구리도 이런 잡탕구리 감독이 없다. 그녀의 최신작으로 국내에 개봉된 영화가 <볼레로 : 불멸의 선율>이다. 춤곡인 볼레로에는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영화광이라면 안느 퐁텐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 번쯤 들여다보게 만들 영화다. 이번엔 지고지순한 예술영화를 찍었다. 안느 퐁텐의 예술관은 무엇일까. 실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볼레로>는 약식으로 얘기하면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전기영화이다. 보다 좁혀서 얘기하면 모리스 라벨이 스페인 춤곡 ‘볼레로’를 자신만의 독특한 선율로 작곡해 내는 이야기이다. ‘불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는 현대인들이 아는 춤곡 ‘볼레로’가 18세기 전통 선율도 아니요, 중남미, 특히 쿠바에서 떠도는 리듬도 아닌, 바로 모리스 라벨의 곡이라는 것 때문이다. 볼레로는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후에 ‘라벨의 볼레로’가 됐다. 그만큼 시공간을 뛰어넘는 불후의 명곡이 됐다는 얘기이다.
영화 &lt;볼레로 : 불멸의 선율&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볼레로>는 라벨이 이 한 곡을 만들어 내기까지 얼마나 신경질적이고 선병질적이며 날카로운 감수성과 까다롭기 그지없는 성벽으로 스스로와 주변 사람을 들들 볶았는지에 주목한다. 라벨(라파엘 페르소나즈)은 지휘대에 올라설 때는 반드시 같은 에나멜 구두를 신어야 한다. 집사인 르블로 부인(소피 귀레민)이 헐레벌떡 신발 두 짝을 가지고 오페라 하우스 리허설 장으로 뛰어 들어오기 전까지 그는 지휘봉을 잡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라벨의 작곡 어시스턴트인 마르그리트(엠마누엘 드보스)는 늘 이런 라벨 때문에 속을 끓인다.

구두에 대한 집착은 일종의 페티시즘이다. 라벨은 진정 사랑하는 여성이자 타인의 아내, 유부녀인 미시아(도리아 틸리어)의 새틴 장갑을 몰래 품에 넣고 다니며 가끔 들르는 창녀 하우스의 여자에게 그것을 끼게 한다. 그럴 때 그는 창녀에게 아주, 아주 아주 천천히 장갑을 끼라고 하며 그 미시아의 몸을 음미하려 한다. 그는 그걸 보면서 자신만의 음감을 얻으려 한다. 연인 미시아의 저속한 사업가 남편은 라벨에게 당신은 예술이라는 비육체적 삶을 살고 있다며 그러니 자신은 당신을 질투할 이유가 없다고 비아냥댄다. 라벨은 미시아가 됐든, 자신이 볼레로 곡을 만들어 바쳐야 하는(계약을 한) 유명 발레리나 이다 루빈슈타인(안느 알바로)이 됐든 누구와도 섹스하지 않는다. 미시아는 라벨이 자신을 너무 사랑해 키스조차 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당신은 재미있는 새야(새장에 넣고 키우는 조롱박이에 불과해)”라고 말한다.
영화 &lt;볼레로 : 불멸의 선율&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볼레로>에는 섹스도, 키스도, 포옹조차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예술적 성취란 무엇인가에 천착한다.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 어떤 요소가 필요한가를 말하려 한다. 예술적 완성을 위해서는 천재성도 중요하고 우연성도 많이 개입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자존감이 높아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낮은 자존감은 뛰어난 예술의 방해꾼밖에 될 수 없다.

모리스 라벨이 고민했던 것은 바로 그 ‘자기 확신’이다. 자신은 곡을 잘 만드는 사람인가, 음악으로 무엇을 이룬 적이 있던가, 제대로, 올바로 해냈는가를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정신적으로 날이 서 있을 수밖에 없고 팽팽한 신경줄은 언제라도 끊어질 수밖에 없음을, 그것이야말로 예술가들 그리고 음악가들이 지닌 기이한 성벽임을 보여 준다. 무엇인가를 이룬 예술가일수록 이상하게도 결핍에 시달리고 예술적 쾌감에 늘 목말라했음을 보여 준다. 예술은 행복해지려고 한다. 그런데 음악이든 그림이든 그것의 주체는 늘 행복하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술(적 행위)을 왜 하는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영화 <볼레로 : 불멸의 선율>의 귀착점은 바로 그 본질의 질문 앞에 서 있다.
영화 &lt;볼레로 : 불멸의 선율&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모리스 라벨은 1875년 태어나 1937년에 죽었다. 유럽이 가장 화려했던 벨 에포크 시대와 가장 참혹했던 1차 대전의 시기를 경유했던 시대이다. 생애의 기간에 비하면 과작(寡作)으로 알려졌으며 영화 내내 빈 오선지를 마주하고 한 줄도 나아가지 못하는 장면을 줄곧 보여 줄 만큼 모리스 라벨은 영감을 얻지 못해 고민에 휩싸였던 모양이다. 전쟁의 죽음을 목도했던 사람들은 손쉽게,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한다. 머릿속에는 늘 할 얘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걸 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모리스 라벨은 이다 루빈슈타인이 공연 일정으로 곡을 내놓으라고 재촉할 때마다 4개월만 더 달라, 아니면 두 달 반만이라도 더 달라고 애걸한다. 모든 창작자의 고민은 맨 처음을 시작하는 ‘그 한 줄’이 나와줘야 하는데 그게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안느 퐁텐 감독 역시 이 영화 <볼레로 : 불멸의 선율>의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그 한 줄 때문에 고민했음을 역력히 드러낸다. 위대한 작곡가든 위대한 작가든 또는 위대한 감독이든 모두 다 똑같이 자신만의 뮤즈와 영감을 찾고, 얻기 위해 부단한 고민을 했음을 말해 준다. 거기에는 부도덕, 비윤리의 개념이 낄 공간이 없다. 모리스 라벨이 평생 세 명의 뮤즈, 곧 이다 루빈슈타인과 미시아, 마르그리트 사이에서 방황했음을 영화는 기록하고 있다.
영화 &lt;볼레로 : 불멸의 선율&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모리스 라벨은 행복했는가. 그가 뇌병변을 앓았고 기억의 쇠퇴와 치매 증세에 시달리다가(‘볼레로’를 들으면서 "누가 저 곡을 만들었는가"라고 묻는다.) 사망한 것은 그의 육체적 쇠함 때문이 아니다. 세기의 명곡을 만들었고 그 정신의 고단과 피로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셈이다. 볼레로는 불멸의 선율일지는 몰라도 정작 모리스 라벨은 불멸이 아니고 그 어떤 예술가들도 불멸일 수 없다. 인간의 행복과 예술의 성취는 상반되는가, 어느 정도만 상충하는가, 아니면 완벽하게 반비례하는가. 당신은 사랑하는 여자와의 키스를 선택할 것인가 영원불멸의 예술적 재능을 선택할 것인가. 이 영화가 당신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관련 리뷰] 볼레로 만든 라벨의 일대기...그의 숨은 뮤즈 찾기

오동진 영화평론가

[영화 <볼레로: 불멸의 선율>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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