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된 도자기를 와르르 구겼다…실패도 해봐야 실력이 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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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혜의 물레를 차며] 요즘 가장 '힙'한 달항아리새옹지마. 물레를 차면서도 새삼 깨닫는 인생의 진리다. 어느 날은 마치 내 손이 요술방망이라도 된 것마냥 손이 흙을 타고 노닌다. 흙덩어리가 웬일로 내 말을 이렇게 잘 듣나 싶을 때, 흙기둥이 쭉쭉 올라갈 땐 마냥 기쁘고 즐겁다. 특히 달항아리의 배 부분을 불룩하게 낼 때, 전 아래 어깨 라인을 예쁘게 다듬는 중요한 과정이 잘 되면 신이 날 수밖에.
힘겹게 차 올린 기물도 굽 깎다가 망치기 일쑤
무너져내린 도자기를 구기며 뼈아픈 실패도
750℃ 초벌과 1255℃ 재벌의 고온을 견딘 달항아리
'가마신'에게 기도하며 무사히 나오기를 바랄 따름
완성된 기물은 마치 '자식'처럼 귀하게 느껴져
커다란 달항아리를 품에 안기까지
드디어 지난번 물레를 찼다고 썼던 달항아리가 완성됐다. 두 개의 큰 대접 같은 모양의 기물을 합치는 '업다지' 기법으로 길쭉한 달항아리를 만들었더랬다. 상온에서 약 2주간 서서히 건조시킨 뒤 750℃ 온도로 초벌에 들어갔다. 높이가 42㎝가량 되기 때문에 가마의 절반 정도를 할애해야만 구울 수가 있다. 다른 작은 기물을 수십 개 대신 달항아리 하나를 넣는 셈이다. 가마 소성비가 비쌀 수밖에 없다.그리고는 유약 작업. 여러 색상, 질감의 유약 가운데 골라 안과 밖을 고르게 칠해줘야 한다. 특히 안쪽에는 물을 담아 화병처럼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발라 물이 도자기 몸체에 스며들지 않게 하는 게 좋다. 나의 선택은 밀크유. 마치 우윳빛처럼 뽀얀 하얀색 유약으로, 유광으로 빛이 난다. 달항아리에 잘 어울린다고 판단돼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유약이다.
달항아리 안쪽은 밀크유를 듬뿍 부어 항아리를 돌려가면서 안쪽 벽면에 발라준다. 안쪽의 윗부분과 전 부위는 결국 붓으로 일일이 발라줘야 한다. 겉면도 마찬가지. 전기물레 위에 올려놓고 아주 천천히 돌리면서 밀크유를 꼼꼼하게 바른다. 유약 상태에 따라 다르지면 보통은 2~3번은 덧칠해줘야 한다. 손이 보통 가는 게 아니다. 달항아리처럼 큰 기물의 유약 작업을 끝내고 나면 팔이 떨어져나갈 것만 같다. 진짜다.
유약까지 바른 달항아리는 이제 가마에게 맡기면 된다. 1255℃ 고온으로 재벌에 들어간 달항아리는 1255℃까지 승온하는 데만 10시간이 걸린다. 한 번 재벌에 들어간 기물을 꺼내기까지는 무려 36~38시간이 소요된다. 유약이 자연스럽게 녹아 흘러 도자기 위에 입혀지는, 뜨겁게 달궈지는 필수 과정이다.
그렇게 내 품에 안긴 달항아리. 일반적인 디자인보다는 좀 덜 뚱뚱하고 좀 더 길쭉한 형태인데, 얄쌍한 느낌이 들어 썩 마음에 든다. 물론 한쪽 구석에 유약이 제대로 안 발린 것인지 고르지 못하게 나왔지만, 이 또한 운명이리라. 항상 100%일 수 없는 것이 또한 가마의 매력이기도 하다. 도예가들이 흔히 "'가마신'이 허락하셔야 잘 나오는 법"이라고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4시간의 정성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리하여 도전. 두 개의 대접 같은 기물을 붙인 자국이 선명한, 옛날 선조들의 그 달항아리를 재현하기 위해 접합부분을 약간 일자로 뽑아 두 개의 기물을 찼다. 이제 잘 붙인 뒤 굽을 깎고 전 부분을 다듬으면 될 일이다.망치기 쉬운 제작과정, 750℃의 초벌과 1255℃의 재벌, 그 모든 과정을 다 잘 마친 기물은 정말 귀한 자식 같다. 유약발림 등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게 예뻐보이니, 원. 이런 저런 모양과 이런 저런 높이의 달항아리를 빚으며, 물레를 차며, 오늘도 난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