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친구와 바람을 피웠다…그래도 결혼은 계속됐다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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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1898~1967)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좌절된 욕망
초현실적 그림에 담아내다
화가는 ‘베프’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다 건너 벨기에 브뤼셀에 남겨두고 온 아내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녀를 즐겁게 해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그만큼 화가는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동화 같은 만남, 전쟁으로 헤어진 후 운명적인 재회, 16년간의 결혼 생활…. 그 오랜 세월 동안 부부는 항상 서로의 버팀목이 돼 현실을 견뎌왔습니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내가 꺼낸 첫마디가 “이혼하자”라니. 그것도 내가 편지를 보낸 그 친구 놈과 바람이 났다니…. 오늘은 이 기구한 운명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사랑과 예술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빠지다
마그리트가 열네 살이던 1912년,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오랫동안 앓았던 우울증 때문이었습니다. 마그리트는 훗날 건조하게 회고했습니다. “1912년, 어머니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강에 몸을 던졌다.” 미친 듯이 웃고 장난치며 놀아주다가도 갑자기 싸늘하게 등을 돌리는 아버지, 가난함과 풍족함을 정신없이 오가는 집안 형편, 갑자기 목숨을 끊은 어머니…. 총명하고 감수성 예민한 마그리트에게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그리트는 어릴 때부터 신비한 것들에 끌렸습니다. 예를 들어 마그리트는 나이가 들어서도 “어린 시절 침대 옆에 있던 보물상자처럼 생긴 상자가 기억난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겨 있던, 그래서 낯설고 불안한 감정을 자아내면서도 어딘가 매력적인 상자였다.” 또 마그리트는 어릴 적 열기구가 집 지붕에 추락했던 사건에 대해서도 종종 얘기했습니다. 갑자기 지붕 위로 떨어진 거대한 풍선, 그리고 귀덮개가 달린 헬멧을 쓰고 기구를 회수하려는 기구 조종사들은 어린 소년에게 하늘과 구름, 잘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매혹을 심어줬습니다.
납골당이라는 죽음의 공간, 그 위로 올라오자 눈 앞에 펼쳐진 대낮의 풍경과 이를 캔버스에 그리는 화가, 캔버스 속 마법처럼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 각각 떼어놓고 보면 그렇게 특별한 장면들이 아니지만, 이 장면은 어린 마그리트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평범한 것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얽혀 신비로움을 만들어내고, 마침내 마음을 흔드는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도 이런 경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초현실주의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각자 브뤼셀의 한 식물원을 걷던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친 겁니다. 그날 저녁 마그리트는 장미 두 송이를 종이에 그려 조르제트에게 가져다줬습니다. 그날 이후 둘은 매일 저녁 만나 함께 걸었습니다.
2년 뒤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모아놓은 돈도 물려받을 돈도 없었던 까닭에 마그리트는 벽지를 디자인하고 광고용 포스터를 만드는 등 닥치는 대로 일해 조르제트를 먹여 살렸습니다. 하지만 조르제트와 함께 하는 생활은 행복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상업 미술 경험은 마그리트에게 새로운 창조력을 불어넣고 대중의 눈을 확 잡아끄는 능력을 키워줬습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고급 자동차, 모피 코트, 담배 등 다양한 회사의 광고에 쓰였습니다.
마그리트가 본격적으로 초현실주의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이 무렵입니다. 우연히 초현실주의의 선구자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을 보게 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내 눈은 처음으로 사유(思惟)를 봤다.” 낯익은 존재들을 재구성해 보는 이의 허를 찌르고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 이를 통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생각에 빠지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그리트가 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에 대한 사랑조차도 아내에 대한 사랑에는 못 미쳤습니다. 초현실주의자 모임의 대표 격인 앙드레 브르통이 모임에서 조르제트의 십자가 목걸이에 대해 “낡은 질서와 부르주아의 상징이니 당장 치워 달라”고 모욕적으로 요구하자 마그리트는 조르제트의 손을 잡고 나와버렸고, 초현실주의자 모임에서도 탈퇴했습니다. 마그리트는 말했습니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는 남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잘못된 만남
런던에서 마그리트는 매력적인 여성 초현실주의 예술가 쉴라 레그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웠으며 지적이었습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남자가 그녀에게 반했습니다. 마그리트도 그녀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친구에게 “그녀는 이상적인 여성이야. 조르제트가 없었으면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을 정도”라고 털어놨으니까요. 이 때문에 마그리트는 오랫동안 그녀와 불륜 관계였다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황을 분석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 사람은 아무 관계가 아니었고, 마그리트의 표현은 단순히 그녀의 예술에 대한 칭찬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마그리트는 아내의 이혼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운명의 사랑이었던 아내를 이렇게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용서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으로 돌아오라고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설득 끝에 아내는 마그리트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마그리트가 원했던 대로 둘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한발 더 나아가 볼까요. 어쩌면 우리는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표현하려 해도 결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현실에 비하면 표현과 이해는 언제나 무기력합니다. 먼 나라의 전쟁이 어떻고, 백 년 뒤의 미래가 저떻고 아는 척 떠들면서도 바로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한 치 깊이 마음도 모르는 것처럼. 마그리트가 평생을 사랑한 아내와 친한 친구의 마음조차 들여다볼 수 없었던 것처럼.
그런데도 마그리트는 1967년 69세의 나이로 췌장암에 걸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가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떠난 유작은 대표 연작인 ‘빛의 제국’이었습니다. “나는 서로 다른 개념들, 즉 밤의 풍경과 낮의 하늘을 재현했다. 이 풍경은 우리에게 밤에 대해, 낮의 하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낮과 밤이 이렇게 동시에 존재한다는 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홀리게 한다. 나는 이런 힘을 시(詩)라고 부른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이번 기사는 Magritte: A Life(Alex Danchev 지음)과 르네 마그리트(마르셀 파케 지음, 김영선 옮김, 마로니에북스-TASCHEN)를 중심으로 Magritte (Suzi Gablik 지음) Keeping an Eye Open: Essays on Art (Julian Barnes 지음), 뉴욕 MoMA 작품설명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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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syoung@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