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만든 친밀함, 우리는 정말 가까워졌을까?
입력
수정
[arte] 변현주의 Why Berlin예술과 과학기술. 일견 너무도 다른 두 분야처럼 보이지만 예술과 과학기술은 언제나 함께 발전해왔다. 비디오가 발명되며 등장한 비디오 아트부터 AR, VR, AI 기술을 적용한 인터랙티브 작품까지…. 고대 채색에 사용되던 템페라에서부터 유화물감, 아크릴 같은 회화 재료도 모두 기술이 발전되며 변화한 것이다.
예술과 과학기술의 상호적 관계 성찰하는
베를린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제38회 트랜스미디알레(Transmediale)'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이 다시 인간과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기술과 매체는 예술에 어떠한 변화를 촉발시키는지 성찰하는 베를린의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트랜스미디알레(Transmediale)'에 대해 이번 칼럼에서 소개하려 한다.
올해로 38회를 맞는 트랜스미디알레는 매년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열린다. 198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비디오 필름 페스트’에서 시작해 독립된 행사가 됐다. 1998년 트랜스미디알레라는 이름으로 바뀌며 비디오 아트를 넘어 멀티미디어 기반 예술을 폭넓게 포함하는 미디어 아트 축제가 됐다. 트랜스미디알레는 매년 다른 주제로 진행되며 미디어와 예술에 대한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논의를 다루는 강의, 토론, 심포지엄, 워크숍, 스크리닝, 전시, 퍼포먼스 등을 개최한다.
EMAP은 유럽 15개국의 16개 단체 및 150여 개의 국제 파트너 기관이 협력하는 플랫폼으로 사회, 환경, 과학기술의 변화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지원해 예술가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하고,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예술의 상호적 관계에 대한 비평적 담론의 장을 열어왔다.
이런 EMAP의 지난 7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전시로서 열린 《UnNatural Encounter》는 지속 가능성, 사회 생태 정의, 테크놀로지의 변화처럼 우리 시대의 근본적 문제를 다루는 작품 11점을 선보였다. 실험적 다큐멘터리, 사운드 조각, 퍼포먼스, 비디오, VR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이 전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예술과 과학기술 등 각 분야를 초월하며 간학제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작품들이 제작됐다는 점이다.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집중적으로 열린 1월 29일부터 2월 2일까지는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에 대한 강의로 문을 열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선언으로 잘 알려진 맥루한의 미디어 이론은 과학기술과 사회가 미치는 영향의 상관관계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올해 열린 맥루한 강의에서는 퀴어 미디어 역사학자 케이트 매키니(Cait McKinney)가 시위의 수단으로 이뤄지는 온라인 ‘블랙아웃’ – 콘텐츠 삭제, 접근 차단, 검은 이미지로 인터넷 일부를 일시적으로 중단 – 의 역사와 아날로그 시위 전략이 어떻게 디지털 환경에서의 시위로 변환돼 사람들을 연결하고 지식을 공유하며 집단행동을 촉진하는지를 논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혹은 각종 검색 프로그램이 우리가 흥미를 갖고 연결되고자 하는 대상과 주제에 대해 알고리즘으로 정보를 제안한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이처럼 디지털 시스템이 우리 삶에 깊숙하게 침투한 시대에는 ‘근접성의 수행(Performance of Proximity)’이 이뤄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알고리즘이 우리가 갈망하는 친밀함 대신 새로운 근접성을 발전시켜 우리의 연결 욕구를 (재)형성하고 기존의 친밀한 관계를 대체한다는 점을 비평적으로 조명하며 근접성, 친밀함, 관계 등에 대해 질문했다.
니나 데이비스(Nina Davies)와 아티스트 듀오 2girlscomp의 퍼포먼스는 게임의 NPC(non-playable character)의 뒤뚱거리는 움직임을 댄스로 승화하여 틱톡에서 트렌드가 되었던 것을 차용해 퍼포먼스로 보여줬다. 이를 다시 온라인 게임 GTA V의 환경에 삽입하며 비디오 게임의 논리를 변형시키는 역행적 수행을 했다.
이 외에도 작가들의 공연과 발표, 스크리닝 등을 통해 주기적으로 활성화되는 설치 작품도 볼 수 있었다. 한국 출신 작가 유하나는 북한에서 풍선으로 매달아 보내는 선전물과 각종 폐기물에서 영감을 받아 풍선을 매단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풍선이 지닌 매체로서의 상징을 유희적으로 뒤틀고, 렉처 퍼포먼스를 통하여 새로운 층위를 더해 메시지가 다각도로 해석될 수 있음을 다뤘다.
202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트랜스미디알레와 협약을 맺고 디지털아트 및 무빙 이미지, 디자인, 사운드, 미디어 이론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이론가, 연구자, 디자이너들에게 해외 레지던시 참가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공적 자원의 예술 실천가 지원은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나 지원의 대상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변현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