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에 반사된 과일들...그 다음은 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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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용재의 맛있는 미술관우스꽝스럽다 못해 믿기지 않는 영상을 보았다. 한 미국인이 화장실 거울을 수건으로 가리며 "왜 가려도 계속 내가 저 너머에 보이는 거지?"라고 놀라 토로하는 광경이었다. 그는 반사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일까? 워낙 웃기려고 왜곡해 만든 숏폼이 많은지라 의심은 가지만 미국이라면 또 그럴 수도 있다. 공교육 상태가 좋지 않은 나라니까.
테이야 레흐토의 판화 (2016)
만약 이 사람이 정말 반사가 무엇인지 몰랐다면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 학창시절 과학시간에 배웠던 기초 지식을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다고 안심하며 수건을 거울에서 치울지는 보장할 수가 없다. 계몽보다는 안심시키는 게 더 낫다고 믿고 반사를 활용한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보여주는 게 차라리 바람직하다. 말하자면 미술치료를 하는 것이다.
놀라운 건 이 작품이 판화라는 점이다. 1965년 핀란드에서 태어난 레흐토의 작품 세계는 일상의 정물을 담은 다색 판화로 이루어져 있다. 미술에 전혀 조예가 없더라도 이 다채로운 색들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켜를 만들었을까 생각하면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반사되었다는 설정에 판화라는 매체까지 맞물려, 지극히 일상적인 정물이 거의 숭고할 지경으로 승화되는 게 레흐토와 이 작품의 매력이다.
작품이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정물의 다음 순간을 생각하게 된다. 재료 준비가 거의 다 끝난 듯 보이니 아무래도 잼을 끓이는 상황이 되겠다. 과연 잼은 잘, 맛있게 끓여졌을까? 마멀레이드 같은 별칭도 있지만 잼은 궁극적으로 '프리저브(preserve)', 즉 재료의 보존을 위한 조리법이다. 말하자면 지금처럼 냉동 및 냉장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 과일을 제철 외에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방부 처리를 한 음식이 잼이다.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과일을 끓이면 펙틴이 나오고…그렇다면 집에서 잼을 끓여 보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음식평론가로서 도시락을 싸들고 말리고 싶다. 요즘 생산되는 과일의 상태는 잼 조리에 적합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생식을 바탕으로 품종이 개량돼 있어 단맛과 신맛의 균형도 맞지 않고 수분 함유량이 높다.
따라서 설탕을 더해 끓이면 금속성의 맛이 나는 멀건 수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잼이라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것처럼 바로 떠오를 사과부터 딸기, 그리고 무화과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과일이 마트에서 파는 것 자체로는 실격이다. 그나마 국내에서 재배하지 않는 오렌지 정도라면 마멀레이드를 만들어 볼 만 한데, 그래도 딱히 권하고 싶지 않은 건 대량조리한 기성품이 훨씬 맛있기 때문이다.
이용재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