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엿 같다’던 80년대 나폴리 소년, 135분의 자전적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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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대건의 소설처럼 영화읽기2020년 즈음을 전후로 거장 감독들이 자신의 유년기를 다룬 자전적 영화를 잇달아 선보였다. 알폰소 쿠아론은 <로마>를, 스티븐 스필버그는 <파벨만스>를,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은 <신의 손>을 만들었다. <신의 손>의 주인공은 소렌티노의 분신과도 같은 ‘파비에토’라는 청년이지만, 파비에토와 그의 가족들은 영화가 시작하고도 한참 뒤에나 등장한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영화 (2021)
영화를 통해 80년대 중후반을 돌아보며,
'마라도나'에 얽힌 자신의 유년 시절을 풀어내
영화는 항공샷으로 촬영한 롱테이크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된다. 푸르른 바다에서 출발한 카메라는 유려한 움직임으로 세계적인 미항 나폴리의 풍광을 담아낸다. 이 장면을 통해 소렌티노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나폴리’라는 도시 자체임을 강조한다. 이 도시는 아름다움과 지저분함, 장엄함과 소란스러움이 한 데 뒤섞인 곳이다.
흔히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감각으로 후각이 언급되지만, 시청각 매체인 영화에서는 재현이 어렵기 때문이다. 소렌티노는 모든 장면이 우리의 기억처럼 생생하게 아로새기는 마술을 부린다. 가족들과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감각, 나폴리의 푸르른 바닷가에서 물놀이하는 감각, 퉁퉁 튕기는 고속 보트를 타는 감각은 마치 그 일을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각인된다.
소렌티노는 자기 가족에게 일어났던 비극적인 아픔을 영화로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가 고향인 나폴리에 돌아와 이 영화를 촬영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행복한 유년 시절의 기억이 아름답게 그려진 만큼, 그 뒤를 이은 비극의 낙차가 크게 느껴진다. 나폴리가 모든 것이 뒤섞인 도시이듯이, 슬픈 정서가 아름다운 풍경과 뒤섞인다. 그러나 삶은 계속 흘러가고, 소년은 성장한다.
가장 깊은 내면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강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우리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는 유명한 말은, 이 영화에서도 다시 한번 증명된다.
정대건 소설가·감독
[영화 '신의 손 (The Hand of God)'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