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땅' 배우들의 '만땅' 서스펜스 <올드 맨>… 진실은 늘 침묵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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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아웃 오브 넷플릭스이건 애초부터 잘 될 드라마가 아니었다. 늙었다. 다 늙었다. 온통 늙었다. 극 중 주인공들도 늙었고 그걸 연기하는 배우들도 늙었다. 주인공 댄 체이스(원래 이름은 조니, 나중 이름은 피터 콜드웰 등등 숱하게 이름을 바꾼다)를 연기하는 제프 브리지스는 1949년생으로 76세이며 상대역 해롤드 하퍼 역의 존 리스고는 1945년생으로 80세이다. 둘 다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연기도 어기적어기적한다. 영화도 어기적어기적 느린 호흡이다. 그러나 웬 걸. 7부작에 이르는 이 드라마 <올드 맨(The Old Man)>은 서스펜스가 ‘만땅’이다. 정통의 첩보 스릴러로서 미스터리와 긴장감이 넘친다. 최근 OTT 작품 중 몰입감이 가장 좋은 작품이지만 숨겨져 있다. 그리 많이 알려진 작품이 되지 못했다.
디즈니 플러스 정통 첩보 스릴러
7부작
이런 드라마일수록 인물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이름과 극 중 배역을 잘 따라가야 한다. 모든 인물의 배우 이름까지 다 외울 수는 없다. 일단 아프간 쪽 인물들이 은근히 중요하다. 조니는 아프간 침투 과정에서 조국인 미국을 배반했다고 지목받고 수십 년을 반역죄로 수배 중인 인물이다. 미국에서의 반역죄는 공소시효가 없다. 조니의 아프간 탈출 그리고 미국 정보부로부터의 추적을 따돌리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그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해롤드 하퍼다. 조니는 탈출할 때 여자 한명과 함께 했는데 아프간 유력 군벌이었던 파라즈 함라드(나비드 네가반)의 아내 벨로르 타르파르(림 루바니)였다. 두 연인은 미국을 떠돌며 숨어 지내면서 딸을 낳는데 이름은 에밀리(알리아 쇼켓)이지만 현재는 앤젤라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녀도 FBI 방첩대 소속으로 놀랍게도 해롤드 하퍼의 오른팔이다. 하퍼는 앤젤라가 친구인 조니, 곧 댄 체이스의 딸이라는 걸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되면서 충격에 빠진다. 해롤드 하퍼는 아들을 잃었고 앤젤라를 대신 자식처럼 아껴 왔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은 바로 위, 인물들 설정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지레 지쳐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상관없다. 다만 저쯤에서 읽기를 포기했다면 이 드라마 <올드 맨>이 무슨 얘기를 하려 하는가에 대한 해석은 놓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읽기를 권하는 바이다. 아 그리고 한명이 더 있다. 댄 체이스가 도피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자이다. 이름은 조이 맥도널드이다.
조이 역의 여배우 에이미 브레넘은 마이클 만 감독의 전설의 영화 <히트>(1995)에서 강도단 두목 닐 맥커리(로버트 드 니로)의 여자가 되고 상처를 받는 인물로 나온다. 아마도 그 캐릭터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드라마에도 캐스팅된 것으로 보인다. 인물 설정이 비슷하다. 평범한 이혼녀였다가 댄 체이스와 함께 다니며 첩보기술과 은둔 기술을 익히게 되는 여자로 나오기 때문이다. 여인 조이와 댄 체이스의 관계는 이 드라마의 가장 상업적인 러브 라인으로 일부 시청자는 그게 좀 불편할 수도 있겠다. 다소 억지스럽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광들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주는데 로버트 레드포드, 페이 더너웨이 주연의 <코드네임 콘돌>(1975)을 떠올릴 것이다. 거기서도 평범한 여성이 매력적인 남자를 만나 첩보 일을 돕게 된다. 어쨌든 여배우 에이미 브레넘도 이제 환갑이다. 그녀도 영화에서 다소 어기적거리며 걷는다. 반복하지만 영화의 인물들이 온통 늙었다. 다시 한번 더 반복하지만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 <올드 맨>은 궁극적으로 미국이 저지른 중동 지역의 정치적 군사적 죄과를 극 중의 두 인물이 개인의 역사로 갚아 나가며 스스로의 삶, 인간이 이루어야 할 사회적 삶의 성찰을 깨달아 감으로써 그 죄의식을 희석시켜 나가는 이야기이다. 댄 체이스와 해롤드 하퍼는 친구 사이지만 조국이라는 불가항력의 추상적 대의 앞에 서로를 배신하거나 죽음을 사주하기도 한다.
해롤드는 댄이 다시 정보부 망에 드러나자 그의 체포에 앞서 먼저 암살하려 한다. 해묵은 비밀들, 추악한 음모의 얘기들을 다시 땅에 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롤드 역시, 친부인 댄 체이스처럼 부하인 앤젤라(혹은 에밀리)를 보호하려 애쓴다. 국가의 이익과 관련된 싸움은 그렇다 치고 둘은 딸, 혹은 양딸 같은 후견인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려 한다. 카인이 그랬듯이 이 둘 역시 자신의 죄과를 스스로 짊어지려 한다. 그 고뇌가 돋보이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올드 맨>이 왜 올드맨들의 얘기인지를 알게 만든다. 그 같은 고민과 인간이 지녀야 할 희생과 구원의 가치를 아는 세대는 이 시대엔 올드맨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실은 침묵 속에 존재한다.’ ‘이름은 그저 이름일 뿐이다.’ 사람은 오래 살아서 아는 것, 겪은 것이 많은 게 아니라 오랜 관계로 엮여 있기 때문에 겪게 되는 일이 많다. 사람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때로는 진실로 신통 맞게도 그 과거가 지금의 현재를 살리곤 한다. ‘올드맨’이 그려 내는 수많은 경구의 실천학이다. 진실은 침묵 속에 있으며 인생은 절대로 절대적이지 않고 절대로 상대적이다. 그 철학을 곰곰이 되새기며 보면 여러 가지 삶의 성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시즌2는 국내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