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社 릴레이 유상증자…7.2조 폭탄에 증시 화들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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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증시 호조에올 들어 주식시장에서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상장사가 줄을 잇고 있다. 공매도 재개와 미국 상호관세 발효를 앞두고 선제적으로 자금 확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제 현금 확보 나서
증자 목적따라 주가 요동
삼성SDI는 반등 성공
3자배정은 호재 인식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 들어 주주나 외부 투자자를 상대로 유상증자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상장사는 71곳에 달한다. 이들 상장사의 유상증자 금액만 발표 기준 7조2000억원으로 집계된다. 삼성SDI(2조원)에 이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3조6000억원)가 대규모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발표하자 부광약품도 지난주 같은 방식으로 1000억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증시 상승세에 찬물
연초 주식시장 호조 속에 자금 조달 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뀌자 상장사의 주식 발행이 잇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올 들어 코스피·코스닥지수는 각각 6.6%, 2.3% 올랐다. 31일 공매도 재개나 다음달 2일 예고된 미국 상호관세 부과에 따라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상장사의 자금 조달 계획을 앞당겼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 헤지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그나마 증시 분위기가 좋아졌을 때 미리 현금을 쌓아 두려는 상장사가 늘어난 것”이라며 “반대로 대규모 유상증자가 잇따르면서 시장 상승세의 발목을 잡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지난 20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내 증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밝힌 이후 13% 가까이 주가가 빠졌다. 부광약품은 28일 주주배정 방식의 1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공시하면서 13.33% 급락한 3900원에 장을 마쳤다.
이들 상장사는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택했다. 주주를 대상으로 자금을 조달한 뒤 실권주가 나오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신주 발행가 할인율이 상대적으로 큰 데다 대규모 주식가치 희석 요인으로 인식된다. 이런 공모 방식의 증자를 발표하면 대부분 주가가 급락한다.
하지만 반드시 악재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주주를 대상으로 자금을 조달한다고 해도 신규 자금이 발행 기업의 성장 스토리로 이어질 수 있다면 주가가 오르기도 한다. 대표적 사례가 2조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증자를 발표한 삼성SDI다. 삼성SDI 주가는 14일 증자 발표 당시 급락했다가 회복세를 타고 4%대 상승했다. 주주들에게 전고체 배터리 개발과 공장 확충으로 전기자동차 시장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을 극복하겠다는 점을 설득한 결과다.
◇증자 방식·목적 꼼꼼히 봐야
제3자를 대상으로 하는 유상증자는 신규 투자 유치로 해석돼 주가가 오로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달 4일 주요 기관투자가의 유상증자 참여 소식을 전한 코스닥시장 바이오 대장주 알테오젠은 공시일을 기점으로 주가가 사흘 동안 11.2% 상승했다. 화장품 유통 플랫폼 실리콘투도 지난달 21일 사모펀드(PEF) 글랜우드크레딧 상대로 1500억원대 유상증자 계획을 내놓자 주가가 14%가량 뛰었다. 에코프로머티는 26일 장 마감 후 3889억원 규모의 3자배정 유상증자를 발표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테마에 편승해 주가가 뛰자 유상증자에 나서는 사례도 있다. 올해 유상증자 공시가 가장 많은 상장사는 제이준코스메틱(5건)이다. 운영자금 명목으로 총 410억원을 조달한다고 밝혔다. 주력 사업인 마스크팩 판매가 부진하면서 수년째 적자를 기록 중이다. 작년엔 5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 종목은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 테마에 올라타 주가가 37% 넘게 급등했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유상증자는 조달 시점과 방식에 따라 호재와 악재로 나뉜다”며 “채무 상환 등 조달 목적에 따라 주가 향방이 달라지는 만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류은혁 기자 ehryu@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