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답했다 "제 그림은 지브리의 외피를 쓴 이미지일 뿐이죠"
입력
수정
예술가의 정체성인 고유의 스타일 모방한 챗GPT 이미지
저작권 회색지대에 있지만 예술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챗GPT도 "기계가 만든 감동은 결국 누구의 흔적도 없는 감동" 답해
고작 몇 분 만에 챗GPT가 뚝딱 만들어낸 이미지를 저장하고 스마트폰 배경 화면으로 설정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허락한 그림인가’, ‘저작권 문제는 없을까’ 등이다. 그림이라는 매체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도 떠오른다. “AI가 ‘특정 스타일을 모방’해 그린 그림을 과연 예술로 볼 수 있을까.”
‘작가의 명함’ 스타일
시각예술에서 ‘스타일’은 중요한 요소다. “~풍(風)의”로 쓸 수 있는 스타일은 그림과 작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등 부드러운 터치감과 따뜻한 분위기의 작화가 돋보이는 지브리 작품을 보고 작가인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리거나,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근육질의 손오공에게서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를 투영하는 식이다. 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노란 피부색을 보는 순간 ‘익살스럽다’는 단어가 연상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문제는 법적인 영역에서 스타일은 회색지대에 있는 애매한 존재란 점이다. 예컨대, 빈센트 반 고흐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지만, 인상주의 스타일이 고흐의 재산은 아니다. 저작권은 표현의 고유성에 적용되는데, 스타일은 일종의 아이디어에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지브리 허락 없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캐릭터 가오나시를 그려 사업을 일으키거나 수익을 얻는다면 저작권을 위반한 것이지만, ‘지브리 느낌’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건 법에 저촉되는 행위가 아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우리 GPU가 녹아내리고 있다”고 할 정도로 챗GPT가 셀 수 없이 많은 지브리풍의 그림을 생성해내게 된 배경이다.
AI엔 ‘고유한 스타일’이 없다
저작권 리스크가 없다 하더라도, 챗GPT가 그린 지브리풍 이미지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여전히 ‘AI 결괏값’을 예술로 볼 수는 없다는 인식에서다. AI의 그림에는 예술 작품이 내재하고 있어야 할 철학적 고민과 미적 탐구, 특유의 스타일에 맞는 테크닉을 갖추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브리풍 그림의 원조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과거 AI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두고 “‘생명’에 대한 모독”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창의성과 함께 예술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로 꼽히는 독창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브리풍이 아닌 챗GPT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려달라’고 입력하자 챗GPT는 “죄송합니다”라며 이미지를 생성할 수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생성AI만의 고유한 스타일은 없다는 표현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챗GPT도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예술의 영역에서 AI가 마냥 금기나 죄악으로만 치부되는 건 아니다. 미드저니 같은 생성AI로 제작한 영화가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고 있고, 미술계에서도 AI가 활용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설치미술 거장 필립 파레노가 AI를 심은 타워를 통해 미술관에 설치한 작품들이 움직이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프랑스 미술그룹 오비어스가 AI를 활용해 그린 ‘벨라미가(家)의 에드몽’이라는 그림이 2018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2500달러(당시 약 4억5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관련 기사] "AI 시대에도 여전히 창작의 중심은 인간이죠"
다만 AI만의 스타일이 정립될 여지는 있다. 특유의 과도한 디테일이나 매끄러움, 비현실감 등 “AI가 만든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특징들이 생기고 있단 점에서다. ‘생성AI만의 스타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챗GPT는 묘한 답을 남겼다. “아직 스타일을 창조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지만, AI만의 ‘미묘한 흔적’은 분명히 생기고 있습니다. 향후 AI 툴이 자기 학습을 기반으로 일관된 시각 세계관을 갖게 된다면, ‘AI만의 스타일’이 생겼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