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일본도 다시 돌리는데 멀쩡한 원전 세워놓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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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2호기 2년째 개점 휴업
계속운전 제도 개선 서둘러야
김리안 경제부 기자
2년째 개점휴업 중인 고리 2호기를 놓고 국내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은 “정부의 중장기 에너지 계획인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국내 가동 원전이 전부 차질 없이 계속 운전할 수 있을 것이란 전제로 수립됐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계속운전 제도는 당초 계획한 원전 등 발전회사 운영 기간을 일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연장하는 제도다. 한국의 계속운전 제도는 원전을 가동하는 주요국과 비교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자로 셧다운을 선택한 일본은 3년 전 탈원전 폐기를 선언한 뒤 지금까지 원자로 14기를 되살렸다. 그중 8기에 대해서는 기존 40년 설계수명에 더해 20년 계속운전을 허가했다.
대표적 원전 강국이었으면서도 글로벌 탈원전 흐름에 동참한 미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포착된다. 지난해 말 미국 콘스텔레이션에너지가 5년간 폐쇄된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2호기의 재가동을 결정한 건 원전 르네상스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전기를 직접 구매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선 계속운전 중인 원전이 한 곳도 없다.
주요국이 원전 수명을 늘리는 데 눈을 돌리는 것은 제일 값싼 무탄소 전원이라는 공감대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열풍 등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추세에 대안은 원전, 그중에서도 계속운전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원전을 계속운전할 경우 발전단가(LCOE)는 ㎿h(메가와트시)당 31.1달러로 대형 원전을 새로 짓는 데 드는 비용에 비해 42%가량 낮다는 연구도 있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여파로 최근 3년 새 원자로 10기의 계속운전 신청이 몰렸다. 미뤄둔 신청을 한꺼번에 처리하면서 심사 기간이 늘어져 고리 2호기는 2년째 멈춰 섰다. 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연장 기간이 10년으로 주요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짧은 데다 심사 중 가동을 중단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멀쩡한 고리 2호기를 2년간 쉬게 한 근본 원인은 원전 생태계를 파괴하려 한 문재인 정부에 있다. 하지만 제도 개선 필요성과 관련해 변죽만 울리며 제도를 신속하게 바꾸지 못한 윤석열 정부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2038년까지 원자로 14기 계속운전을 전제로 짠 11차 전기본은 지금 같은 제도에서는 풍전등화가 될 수 있다. 새로 들어설 정부는 계속운전 제도를 개선할 적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