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극적으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환호했다. 특히 상호관세 문제가 불거진 후 20% 이상 급락했던 반도체 등 ‘관세 피해주’가 일제히 크게 반등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는만큼 이날 랠리가 추세 반등의 시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급등에 사이드카 발동

10일 코스피지수는 6.60% 급등한 2445.06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는 5.97% 상승한 681.79에 거래를 마감했다. 다른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급등했다. 전고점 대비 23% 넘게 급락했던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이날 9.13% 폭등다. 대만 자취안지수 역시 9.25% 급등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16% 올랐다.

국내 증시에선 오전 9시6분 유가증권시장 매수 사이드카(프로그램 매수호가 효력정지), 오전 10시46분엔 코스닥시장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동시에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해 8월6일 이후 8개월 여 만이다.
이날 아시아증시가 일제히 급등한 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부과했던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감이 급격히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이 기간 한국에 부과되는 관세율은 25%에서 10%로 낮아졌다.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미국 경기침체 확률은 65%에서 45%로 대폭 낮췄다.

유가증권시장에서 9거래일 연속 순매도로 일관하며 10조원 넘게 팔아치운 외국인 투자자는 이날 328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코스닥시장에선 1095억원어치, 코스피200 선물 시장에서도 8099억원어치를 사들였다.

고강도 관세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이후 주가가 흘러내렸던 반도체, 자동차 등 수출 관련주가 일제히 급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업종에 대한 개별 관세도 부과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올해 고점 대비 약 27% 급락했던 SK하이닉스는 이날 11.03% 급반등했다. 삼성전자도 6.42% 올랐다. 자동차 업종에 25% 관세가 부과되면서 주가가 급락했던 현대차와 기아도 각각 5.06%, 5.25% 상승했다.

전날 미국 증시에서 테슬라가 22% 급등하면서 LG에너지솔루션(11.31%), 에코프로비엠(9.29%) 등 2차전지주에도 훈풍이 불었다. 조선업종도 일제히 반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미국 조선업의 재건을 도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한국 조선업계와의 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추세 반등’ 기대는 일러

관세 유예로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안도랠리를 펼쳤지만 증권가에선 아직 ‘추세적 반등’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미·중 간 갈등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84%로, 미국은 중국에 대한 관세율을 125%까지 올린 상태다. 각국에 대한 10% 보편관세도 살아있다. 자동차와 철강도 여전히 품목 관세(25%) 적용 대상이다.

KB증권은 중국을 배제하고 57개국에 부과되는 관세가 10%로 낮아진다 해도 미국 S&P500 기업의 2분기 순이익은 6.4% 감소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중 무역 분쟁이 심화하면 한국의 수출 기업의 구조적 비용도 급증한다”며 “이날 증시 반등은 추세적 상승이라기보다 안도감에 따른 일시적 반등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변덕을 부릴 수 있다는 점도 증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전례도 있다. 2018년 초 미·중 관세 전쟁이 시작된 후 그 해 12월 두 국가가 관세를 90일 유예하는 데 합의하자 코스피지수도 2019년 1월~4월 중순까지 약 12% 급등했다. 그러나 2019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를 번복하고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코스피지수는 한달 간 약 7% 내렸다.

다만 일단 경기침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점에서 증시의 하방은 어느정도 다졌다는 평가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이번 관세 유예로 금융 시스템의 위기로까지 치달을 뻔 한 위험은 피했다”며 “한국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만큼 후보가 들고 나오는 정책과 관련된 수혜주 등에 주목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