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온실속 화초 vs 진흙탕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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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병욱 정치부 차장과거 정권의 실세로 불린 한 인사가 A기업 최고위 임원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B기업에서 일하는 엘리트 임원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추진한 적이 있다. 간략히 조사해보니 검증에서 크게 문제가 될 사안이 없었다. 대통령의 허락도 받았다. 대통령과 정권 최고위층이 직접 소속 기업 오너에게 양해도 구했다. 그런데도 무산됐다. 후보자로 거론된 이의 가족들이 “공직을 맡으려면 이혼부터 하라”며 결사항전한 결과다.
공직 제안에 펄쩍 뛰는 엘리트들
한국과 미국의 상호관세 관련 협상이 시작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관가와 경제계에서는 협상 테이블에 앉을 대표선수들의 이력을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노회한 승부사로 구성된 미국 측 대표단과 관료 또는 교수 출신으로 채워진 한국 측 대표단이 협상하면 불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한 고위공직자는 “우리 대표선수는 온실 속 화초, 미국 대표선수는 진흙탕에서 자란 잡초”라고 평가했다.
백악관이 무역 관련 협상 대표로 내세운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만 봐도 이력이 남다르다. 베선트 장관은 헤지펀드 창업자다. 그리어 대표는 국제통상법 전문가로 다국적 로펌의 대표변호사다. 무역 협상 관련 한 축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트레이더 출신 투자은행 최고경영자다. 외교가의 한 인사는 이들에 대해 “거짓말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고, 상대방 뒤통수를 치는 데도 아무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협상에 능숙한 이들”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한국 대표선수를 보면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학계 인사다. 베선트 장관과 상대해야 하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천상 관료다. 특정 정부만의 문제도 아니다. 여한구·유명희 등 과거 통상교섭본부장도 관료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역대 산업부와 기재부 장관을 봐도 대부분 관료 혹은 학자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