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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과 예술성 사이의 균형잡기...'1% 예술' 제도 뒤 숨은 과제들

[arte]김현진의 Legally Muse

도시에 깃든 예술
공공미술 '1% 제도'의 빛과 그림자
카푸어,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 (2004), 높이 10m, 너비 13m, 스테인리스, 시카고 밀레니엄 광장
바람의 도시 미국 시카고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이제 강낭콩을 생각한다. 스테인리스로 마감된 110톤의 초대형 조형물,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는 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 아니쉬 카푸어가 만든 대표적인 공공미술이다. 10년 전 시카고에서 유학할 시절, 매일 아침 전담 인력이 손자국과 먼지를 닦고, 연 2회 야간에 비계를 설치해 정밀 세척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감동을 받았다. 이는 반사되는 ‘도시의 얼굴’을 유지하기 위한 세심한 관리의 사례로, 공공예술이 어떻게 도시의 정체성과 기억을 품을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말해준다.

이렇듯 공공미술은 더 이상 설치된 ‘물체’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이고, 움직임이며, 매일 다시 쓰이는 이야기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변화 역시 같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동상의 도시에서 시민의 광장으로…2022년의 리디자인은 조형물 중심의 위계를 걷어내고, 시민의 발걸음을 중심으로 도시 공간을 다시 구성했다. 이 변화는 단지 공간의 재배치가 아니라, 도시와 시민이 기억을 새롭게 써 내려가는 방식이었다.

“도시란 공동의 기억이 깃드는 장소다.”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로시가 말했듯이, 도시의 조형물, 광장, 건물의 규모와 배치는 단지 기능이 아니라 시대의 흔적이자 정체성이다. 광화문광장은 그 기억이 겹겹이 축적된 서울의 중심이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 있는 이 공간은 한때 ‘기념’의 공간이었으나, 2022년 대대적인 리디자인 이후 ‘일상’과 ‘참여’의 장소로 재해석됐다.
광화문광장 재구성 후 [좌] 이순신 장군 동상과 [우] 세종대왕 동상 / 사진출처. ⓒ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도시를 걷다 보면, 거리의 조형물과 광장의 구조, 조명이 비추는 방식은 그곳의 역사와 정체성을 말없이 전한다. 광화문 광장은 오랫동안 ‘기억’의 공간이었다. 각각 2009년, 1968년에 세워진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한국 현대사의 기념비이자, 공공조형물 논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2022년, 광화문광장은 대대적인 재구성을 거쳐 ‘기념’에서 ‘참여’로, ‘위엄’에서 ‘일상’으로 거듭났다. 도시의 가장 중심에서 이뤄진 이 변화는 공공미술이 단지 눈에 보이는 동상이 아닌, 사유와 움직임을 촉진하는 ‘공적 장소’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공공미술을 제도화한 “1% 예술”이 자리하고 있다. 1951년 프랑스에서 “모든 학교는 예술을 품어야 한다”는 철학 아래 도입된 '1% artistique' 제도는 이후 공공건축물 전반으로 확대되어, 모든 공공건축 공사비의 1%를 예술 설치에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 제도는 전후 복구의 과정에서 시민과 공간을 다시 연결하기 위한 문화적 실험이었다. 우리나라도 1995년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건축물에는 미술 장식을 의무화했고, 이를 통해 수많은 조형물이 도시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도시환경의 품격을 높이고,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며, 대중이 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의 설치 등)
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종류 또는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하려는 자(이하 "건축주"라 한다)는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용하여 회화·조각·공예 등 건축물 미술작품(이하 "미술작품"이라 한다)을 설치하여야 한다.
② 건축주(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제외한다)는 제1항에 따라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는 대신에 제16조에 따른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할 수 있다.
③ 제1항 또는 제2항에 따라 미술작품의 설치 또는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는 금액은 건축비용의 100분의 1 이하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④ 제1항에 따른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여야 하는 금액, 제2항에 따른 건축비용, 기금 출연의 절차 및 방법,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 조항에 따라,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건축물의 경우, 전체 공사비의 약 1%를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해야 하며, 설치를 원하지 않을 경우 기금 출연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는 예술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시민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보장하겠다는 선언으로, 도시의 질서와 감성을 동시에 설계하려는 제도적 실험이다. 이러한 공공미술은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시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공공미술을 통해 시민은 자신이 사는 공간에 애착과 기억을 투사한다.

가령,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망치질을 하는 이 거대한 조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2022년 미국의 조각가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작품 ‘해머링 맨(Hammering man)’이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하절기에는 7시)까지, 35초에 한 번씩 망치질하는 키 22m에 몸무게가 50톤인 철제 거인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저마다의 ‘망치’를 들고 성실하게 일하는 근로자들을 형상화해 삶과 노동의 숭고함과 보람을 담아내고 있다. 겨울이면 산타클로스 모자와 양말을 착용해 시민들에게 소소한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한다.
서울 중심부 광화문 근처(흥국생명빌딩)에 있는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22m 높이 설치물 '해머링 맨' (2022). / 사진제공. 세화예술문화재단
그러나 이러한 “1% 공공미술 제도”는 시행 이후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작가 선정의 불투명성, 철거 시 저작인격권과의 충돌, 조형물의 유지·관리 미흡 등 제도의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던진다.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가령, 청계천의 ‘스프링(Spring)’은 그 논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 작가 코셰 반 브루겐과 클라스 올덴버그가 공동 제작한 높이 20미터의 다슬기를 형상화한 나선형 작품은 청계천 복원의 상징으로 기획되었지만, 시민들 사이에선 “맥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외래 조형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지역 예술 생태계와의 단절, 외국 작가 선정의 타당성 문제는 공공미술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클라스 올덴버그 &amp; 코셰 반 브루겐, &lt;스프링(Spring)&gt; (2006), 청계천, 서울 / 사진출처. © Flickr.com
나아가 공공미술의 철거를 둘러싼 법적 갈등은 ‘저작인격권’의 문제를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작가 리처드 세라의 작품 <기울어진 호(Tilted Arc)>는 1981년 뉴욕 맨해튼의 연방청사 광장에 설치된 길이 36m, 73톤 규모의 곡선 철판 조형물이다. 연방정부 건물을 지을 경우 건축비용의 0.5%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공설치미술에 지출해야 한다는 법에 따라 제작되었고, 17만 5000달러가 소요되었다. 그러나 시야를 가리고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불만이 제기되면서 결국 1989년 법원의 판결로 철거되었다. 세라는 이는 자신의 창작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사건은 공공미술의 ‘공공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균형잡기가 어려움을 보여준다.
리처드 세라, '기울어진 호(Tilted Arc)', 뉴욕 연방정부청사 광장 / 사진. © Anne Chauvet/Richard Serra
보존 역시 중요한 과제다. 프랑스의 에펠탑은 7년마다 약 60톤의 페인트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도장을 새로 한다. 단순한 외형 관리가 아니라, 구조물 자체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작업이다. 색상 또한 하단에서 상단으로 갈수록 세 가지 그라데이션을 두어 하늘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다.
[좌] 과거의 광화문 광장, [우] 2022년 재구성된 광화문 광장 / 사진=필자 제공
‘1% 공공미술’이라는 제도적 장치는 예술을 도시 속에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공공미술은 단지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나누고 관계를 형성하며 도시의 감정을 수집하는 행위이다. 광화문 광장은 이제 기념비를 바라보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으며 기억을 재구성하는 장소가 되었다. 공공미술이 도시의 기억이라면, 도시의 예술은 멈춘 풍경이 아니라, 시민들의 발걸음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현진 법학자•인하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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