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과 예술성 사이의 균형잡기...'1% 예술' 제도 뒤 숨은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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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김현진의 Legally Muse
도시에 깃든 예술
공공미술 '1% 제도'의 빛과 그림자
이렇듯 공공미술은 더 이상 설치된 ‘물체’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이고, 움직임이며, 매일 다시 쓰이는 이야기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변화 역시 같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동상의 도시에서 시민의 광장으로…2022년의 리디자인은 조형물 중심의 위계를 걷어내고, 시민의 발걸음을 중심으로 도시 공간을 다시 구성했다. 이 변화는 단지 공간의 재배치가 아니라, 도시와 시민이 기억을 새롭게 써 내려가는 방식이었다.
“도시란 공동의 기억이 깃드는 장소다.”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로시가 말했듯이, 도시의 조형물, 광장, 건물의 규모와 배치는 단지 기능이 아니라 시대의 흔적이자 정체성이다. 광화문광장은 그 기억이 겹겹이 축적된 서울의 중심이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 있는 이 공간은 한때 ‘기념’의 공간이었으나, 2022년 대대적인 리디자인 이후 ‘일상’과 ‘참여’의 장소로 재해석됐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공공미술을 제도화한 “1% 예술”이 자리하고 있다. 1951년 프랑스에서 “모든 학교는 예술을 품어야 한다”는 철학 아래 도입된 '1% artistique' 제도는 이후 공공건축물 전반으로 확대되어, 모든 공공건축 공사비의 1%를 예술 설치에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 제도는 전후 복구의 과정에서 시민과 공간을 다시 연결하기 위한 문화적 실험이었다. 우리나라도 1995년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건축물에는 미술 장식을 의무화했고, 이를 통해 수많은 조형물이 도시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도시환경의 품격을 높이고,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며, 대중이 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의 설치 등)
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종류 또는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하려는 자(이하 "건축주"라 한다)는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용하여 회화·조각·공예 등 건축물 미술작품(이하 "미술작품"이라 한다)을 설치하여야 한다.
② 건축주(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제외한다)는 제1항에 따라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는 대신에 제16조에 따른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할 수 있다.
③ 제1항 또는 제2항에 따라 미술작품의 설치 또는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는 금액은 건축비용의 100분의 1 이하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④ 제1항에 따른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여야 하는 금액, 제2항에 따른 건축비용, 기금 출연의 절차 및 방법,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 조항에 따라,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건축물의 경우, 전체 공사비의 약 1%를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해야 하며, 설치를 원하지 않을 경우 기금 출연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는 예술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시민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보장하겠다는 선언으로, 도시의 질서와 감성을 동시에 설계하려는 제도적 실험이다. 이러한 공공미술은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시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공공미술을 통해 시민은 자신이 사는 공간에 애착과 기억을 투사한다.
가령,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망치질을 하는 이 거대한 조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2022년 미국의 조각가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작품 ‘해머링 맨(Hammering man)’이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하절기에는 7시)까지, 35초에 한 번씩 망치질하는 키 22m에 몸무게가 50톤인 철제 거인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저마다의 ‘망치’를 들고 성실하게 일하는 근로자들을 형상화해 삶과 노동의 숭고함과 보람을 담아내고 있다. 겨울이면 산타클로스 모자와 양말을 착용해 시민들에게 소소한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한다.
가령, 청계천의 ‘스프링(Spring)’은 그 논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 작가 코셰 반 브루겐과 클라스 올덴버그가 공동 제작한 높이 20미터의 다슬기를 형상화한 나선형 작품은 청계천 복원의 상징으로 기획되었지만, 시민들 사이에선 “맥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외래 조형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지역 예술 생태계와의 단절, 외국 작가 선정의 타당성 문제는 공공미술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김현진 법학자•인하대 로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