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해체되는 순간, 비로소 들려오는 츠지이 노부유키의 음악
입력
수정
[arte] 고지현의 악보 사이를 걷는 시간츠지이 노부유키는 2009년, 제13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중국의 장 하오첸과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 그가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세상을 본 적이 없는 시각 장애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선천성 소안구증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했고, 우승 당시 그의 연주를 들은 반 클라이번은 이렇게 말했다.
3월21일 뉴욕 카네기 홀 츠지이 노부유키 리사이틀
세상의 눈으로는 기적이겠지만, 그에게 음악은 그저 즐거움.
그의 여정을 지켜보는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축복이 있기를.
그는 정말 기적 같아요. 그의 연주는 치유의 예배 같은 힘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신성한 경험이었습니다. (He was absolutely miraculous. His performance had the power of a healing service. It was truly divine.)
노부유키가 '기적의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젠가 나도, 그가 연주하는 그 '치유의 예배' 같은 신성한 감동의 순간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왔고,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왔다.
3월 21일 미국 뉴욕 카네기 홀에서의 리사이틀.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해왔던 그의 음악이었기에 이번 공연에서 그를 직접 마주하고, 그의 무대가 내 마음에 어떤 울림을 줄지 내 귀로 경험할 수 있다는 설렘에 공연에 대한 기대는 점점 더 커졌다. 게다가 이 공연은 열흘 전, 3월 11일 한국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 바로 이후 곧바로 이어진 공연이었기에, 마치 그에게 고국의 향기가 묻어있기라도 한 듯 괜한 친근함마저 느껴졌다.
공연은 총 6곡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노부유키는 첫 곡인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에서 대담하면서도 밝고 열정적인 에너지로 힘찬 연주를 선보였다. 이어 리스트의 '꿈속에서(En rêve)'에서는 꿈결처럼 몽환적이고 섬세한 연주가 피아노 건반 위에 조용히 흘렀다. 말년의 리스트가 남긴 이 작품은 고요함 속에 담긴 명상적인 정서가 느껴졌다.
세 번째 곡인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 1번'은 명확한 타건과 깔끔한 흐름 속 긴장감이 돋보였고, 그다음 쇼팽의 두 야상곡에서는 전혀 다른 감정의 결이 펼쳐졌다. C♯단조 야상곡은 내면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 조용히 가라앉는 감정이, D♭장조 야상곡은 한없이 노래하듯 유려한 선율이 객석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마지막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은 서정적인 흐름과 감정의 자연스러운 연결에 중점을 둔 해석이 인상 깊었다.
[츠지이 노부유키 피아노 리사이틀]
그의 연주는 앞을 볼 수 없는 이가 치는 피아노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 정확했고, 그가 짚어내는 한 음 한 음에는 청명한 음색과 집중된 선율이 담겨 있다. 청중에게 연주를 들려주는 일이 즐겁고, 그 즐거움이 청중에게도 전달되는 연주가 가장 좋은 연주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처럼, 때로는 활기차고 때로는 진중한 그의 연주 모습은 진심 그 모든 것을 즐기고 있는 연주자의 모습을 보는듯했다.
공연 후 객석의 열기도 대단했다. 정숙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의 공연 문화 대신, 끊이지 않는 박수와 환호 사이 곳곳에서 "노부유키 짱"을 외치는 일본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무려 네 곡의 앵콜곡을 연주했으며, 마지막 곡인 ‘라 캄파넬라’가 시작되자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반응이 터져 나왔다. 공연은 마치 즐거운 축제 같은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여전히 끝나지 않는 박수에 노부유키가 조용히 피아노 뚜껑을 덮고 무대 뒤로 사라지고 나서야 관객들은 감동이 가득 담긴 얼굴로 공연장을 나서기 시작했다.
밤 11시 무렵, 공연 후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앉아 있던 카페에 노부유키와 그의 일행이 들어섰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그곳에는 그를 알아보는 이가 하나도 없었기에 나는 더욱 공연 감사 인사나 응원을 보내고 싶었으나, 어쩌면 누군가 아는체하는 것이 그에게는 혹시나 곤란한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주저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카페 안에서 내가 본 그의 모습은 더 이상 화려한 무대 위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 조용히 일행의 안내를 받으며 조심스레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인간 노부유키의 모습을 보았다. 무언가 여의치 않았는지 그의 일행은 카페를 그냥 다시 나갔고, 지인의 팔에 의지해 천천히 어둡고 쓸쓸한 뉴욕의 밤거리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난 끝까지 바라보았다.
시야에서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쯤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고, 그제야 내 마음의 복잡함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장애가 아니라고 했지만, 오직 음악을 향한 그의 숭고한 사랑이 그 거대한 현실의 장애마저 조용히 넘어섰음을 깨달은 순간, 드디어 나에게도 '치유의 예배' 시간이 찾아왔다.
[선천적 시각 장애를 극복한 기적의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
그의 음악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함께 듣고 느껴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하루에 8시간씩 연습을 하는 것이 즐겁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복잡한 환경 속에서 자기만의 질서와 감정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음악을 향한 그의 순수함과 맑은 미소 뒤에는 그가 견뎌낸 인내와 집중의 시간이 얼마나 쌓여 있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반 클라이번이 말한 기적은 앞을 못 보는 리스트의 부활이 아니라, 장애를 이겨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이 그저 음악만을 사랑하고 연주하는 것이 즐거운 피아니스트 노부유키 그 자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음악이 기적이 아니라는 기적의 피아니스트 노부유키.
오직 음악만을 의지하고 음악만을 즐거움으로 여기고 보이지도 않는 길을 걸어가는 한 음악가의 모습이 그의 뒷모습과 겹친다. 그가 걷고 있는 그 길의 끝이 어디일지는 그 자신도 그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그 길 위에서 그가 늘 음악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란다.
고지현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