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처럼 경쟁하며 뛰었다…21㎞ 마라톤 완주한 中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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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1대 출전…베이징서 세계 첫 '로봇 하프마라톤'
1위 톈궁, 2시간 40분만에 완주
좌·우회전 도로, 경사로도 파악
시속 8~10㎞로 뛰며 안정적 러닝
로봇교체 없이 배터리만 3번 바꿔
몇몇 로봇은 넘어지거나 역주행
지난 19일 오전 7시30분 중국 베이징 중심가에서 동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이좡 경제기술개발지구.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곳에선 연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세계 최초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마라톤 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출발선 앞에서는 시민 9000여 명과 휴머노이드 로봇 21대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中 ‘로봇 굴기’ 과시
대만 출신 가수 양페이안이 부른 ‘워샹신’(나는 믿어요)이 울려 퍼지는 대회장엔 세계 각국 취재진과 내신 기자들이 붐볐다. 현장에서 만난 로이터통신 기자는 “이 노래는 미국과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워샹신은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갖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대회는 일반 참가자와 로봇, 두 개 트랙에서 진행됐다. 일반 선수가 먼저 출발선을 나선 뒤 로봇들도 1~2분 간격으로 한 대씩 연이어 달리기 시작했다. 로봇 옆에는 길잡이와 로봇 조종을 담당하는 엔지니어 2~3명이 따라붙었다. 구경 온 한 베이징 시민은 “로봇이 하프마라톤을 완주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세계에 중국의 기술 수준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그 순간을 같이하고 싶어서 새벽부터 나와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들은 출발선인 난하이쯔공원 남문에서 결승선인 퉁밍호정보센터까지 21.0975㎞, 하프코스를 달렸다. 코스에는 직선뿐 아니라 좌·우회전 도로와 경사로 등이 포함돼 로봇의 환경 적응력을 살필 수 있었다. 제한 시간은 3시간30분이었으며, 중간에 로봇을 바꿔 계주 형태로 달려도 무방했다. 코스 중간중간에는 로봇과 배터리 교체를 위한 별도 공간도 마련됐다. 배터리를 교체할 때 소요된 시간도 모두 경기 기록에 포함됐다.
대회에 참가한 로봇은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가 개발한 톈궁을 비롯해 유니트리의 G1, 베이징과학기술대의 작은 거인(小巨人) 등이다. 로봇들은 대개 2족 보행 구조였지만 무게와 주행 능력은 각기 달랐다.
◇작년보다 주행속도 2배
출발하자마자 넘어져 파손되거나 역주행하는 로봇도 눈에 띄었다. 하이라이트는 2시간40분42초로 하프마라톤을 완주한 톈궁이었다. 톈궁은 대회 최장신인 키 180㎝에 무게 52㎏으로 로봇 중 이날 가장 일찍 출발해 제일 먼저 결승선에 들어왔다. 걸음마처럼 종종거리며 걷는 다른 로봇과 달리 톈궁은 출발부터 내내 성큼성큼 달렸다. 어깨에 이름이 쓰인 주황색 민소매 셔츠를 입고 검은색 전용 운동화까지 신은 톈궁은 지난해 같은 대회에선 페이스메이커 역할만 했지만 올해는 정식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지난해만 해도 시속 6㎞였던 주행 속도를 높여 올해는 안정적으로 8∼10㎞로 달렸다. 최고 주행 속도는 시속 12㎞까지 나왔다. 일반 참가자 중 남자부 1위(1시간2분36초)의 평균 시속 20.3㎞ 대비 절반 정도 속도였다. 완주까지 총 세 번의 배터리 교체만 있었고 로봇 교체는 없었다. 톈궁은 우승 상금으로 5000위안(약 97만원)을 받았다.탕지안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긴 다리와 인간의 마라톤 주법을 모방할 수 있는 알고리즘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로봇 교체 없이 배터리 교체만으로 완주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는 중국 국유기업이 지분 43%를 보유하고 있으며, 샤오미의 로봇 부문과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유비테크가 나머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21개 로봇 중 제한 시간에 결승선을 통과한 로봇은 톈궁이 유일했다. 쑹옌파워가 개발한 N2 등 5개 로봇은 3시간30분은 넘겼지만 완주에 성공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