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이 넘어서도 계속되는 '파과(破瓜)'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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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파과>는 60대 여성 킬러 조각(이혜영)의 분투기이다. 그녀는 전성기 때 24대 1의 혈투로 레전드가 됐다. 머리에 꽂는 비녀 같은 무기로 상대를 거침없이 베고 찌른다. 그녀는 신성방역 회사의 고문이자 사실상의 배후 실력자이다. 신성방역은 일종의 자경단 패밀리로서 처단해야 할 사회악, 쓰레기들을 제거하는 일을 한다. 이 과정에서 대체로 돈이 오간다. 어떤 사건을 수임하느냐를 놓고 회사 신성방역의 새로운 CEO 급인 손실장(김강우)과 기존의 경영진인 장비(최무성), 초엽(옥자연) 사이에 갈등과 음모가 벌어지는 참이다. 손실장은 회사를 장악하고 싶어한다. 그가 새로운 킬러 투우(김성철)를 끌어들이는 이유이다. 그렇게 신성방역은 조직 내부 간의 암투에 휩싸인다.
민규동 감독과 이혜영 주연의 영화
주인공 조각의 세 남자
킬러로 키워준 의부(義父) 준 류,
지키고 싶은 남자 강 선생,
그녀를 죽이고 싶은 킬러 투우
인물 간의 심리적 줄다리기 묘사 아쉬워
16살 여자아이 가리키는 용어 '파과(破瓜)'
과거부터 나이 60이 넘은 현재까지
세 남자와 조각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근친 욕망
<파과>는 어떤 의미의 작품이냐보다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한 척하는 영화이다. 그러나 나름 의미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 면에서 평가하면 꽤나 재미가 있는 영화라고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작품이었고 전도연이 나왔던 <길복순>만큼 재미가 있다. 아니 그보다 더 낫다. 여성 킬러의 나이가 훨씬 많아졌고 계급적으로도 낮아졌다. <길복순>의 길복순은 중산층 여성이란 점에 특이점이 있었지만 <파과>의 킬러 조각은 어렸을 때 버림받고 매 맞으며 집단 린치를 당하던 여자애였다. <길복순>의 액션이 어느 정도 퍼포먼스 같은 느낌을 줬다면, <파과>가 보여 주는 액션은 좀 더 리얼하다. 존 윅이 늙은 여성이 된다면 이럴 것이다란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파과>는 조금 다르게도 보여지는 영화이다. 숨어있는 코드가 좀 있다. 민규동 감독 특유의 사이코로지컬 정서가 여기저기 매립돼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심리적 긴장감이야말로 드라마 전체를 확장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감독 민규동은 오히려 그것을 억누르는 쪽으로 갔다. <파과>의 화려한 액션 장면들은 이 영화의 심리학적인 세계를 억누르는 억압 기제로 작동한다. 그 점 때문에 영화는 무심코 재밌게 즐길 만한 오락·액션 영화쯤으로 보이게 하면서도 마치 할 얘기를 끝까지 안 하고 끝내는 것 같은, 뭔가 2% 부족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파과>는 이 세 명의 남자와의 심리적 줄다리기를 좀 더 촘촘하게 보여줬으면 더 좋았을 작품이다. 젊은 수의사와 더 가깝게 있게 하도록 그렸어야 했다. 적어도 키스라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조각과 투우의 격투씬은 리얼 격투씬보다 마치 베드씬의 또 다른 판타지처럼 보여지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파과>가 놓친 것은 더욱더 정밀한 액션이 아니라(후반부 액션 시퀀스는 영화 <인터내셔널>의 구겐하임 미술관 총격씬, <아토믹 블론드>의 원씬 원테이크 격투씬 등에서 따 왔다), 더욱더 깊은 심리 묘사였다. 내가 만약 민규동이었다면 세 남자 중 한명과의 러브 라인을 더 강하게 보여줬을 것이다.
이혜영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다. 장년의 여배우가 여전히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혜영의 보이스 컬러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이혜영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영화이다. 최무성·김무열·김강우·연우진·옥자연 등 조연들도 늘 자기 몫은 필요조건 이상으로 해내는 배우들이다. <파과>가 킬러 액션보다 킬러들의 러브 스토리 영화였으면 어땠을까. 신파가 2% 부족했다. 대중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그 욕망이 모자랐다. 철저하게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객관성은 1도 없다. 그 점을 유의하시기들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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