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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다시 시작하려고 해, 영화도 다시 시작하려고 해

[arte] 오동진의 굳세어라 예술영화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초청작
스페인 영화감독 호나스 트루에바


두 남녀의 이별기 앞세워 그린
키르케고르 '반복'의 이론과
'영화는 우리를 개선할 수 있는가'란
카벨의 학문적 이론

전통적 서술 대신 의식의 흐름으로...
유럽 영화계의 신조류 대변해
스페인 감독 호나스 트루에바의 영화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는 2024년 제77회 칸 감독주간에 초청됐던 작품이다. 영화에선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얘기한 ‘반복’의 개념이 언급된다. 이런 식이다. “반복의 사랑은 유일하게 행복한 사랑이다. 그것은 기억의 사랑처럼 희망의 초조함이나 발견의 불안한 모험성이 배제되며 기억의 슬픔도 없다. 그 대신 반복의 사랑은 순간의 행복한 안정감이 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미학 이론가인 스탠리 L. 카벨도 언급된다. 카벨의 책 『영화는 우리를 개선할 수 있는가』를 두고 대화가 오간다. 이 모두 스쳐 지나가듯 나오는 대사들이지만 두 철학자의 학문적 이론이야말로 이 영화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의 핵심 컨셉이다. 이 영화를 만약 칸 감독주간 상영회에서 영어 자막으로 봐야 했다면 이해를 잘 못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영화는 단순한 멜로영화인 척 많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기에.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의 영화 &lt;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gt;.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호나스 트루에바는 1981년생으로 44살인데, 여전히 신세대급으로서 영화의 형식적 실험을 해낸다. 키르케고르나 카벨 때문이 아니라 트루에바가 보여주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 때문에 영화를 이해해내는 게 처음엔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영화의 로그 라인은 단 한 줄이다. ‘15년간의 연인 관계를 끝낸 알레와 알렉스는 자신들의 이별 파티를 준비한다’이다. 그래서 둘은 영화 속에서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고 주위에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자신들이 헤어지게 됐다는 사실을 알린다. 누구는 충격을 받고 누구는 담담히 받아들인다. 알레(잇사소 아라나)와 알렉스(비토 산즈)의 이별 파티 아이디어는 알레의 아버지(페르난도 트루에바)에게서 나온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반복』이라는 책, 카벨의 책 『영화는 우리를 개선할 수 있는가』 얘기도 알레가 아버지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려 갔을 때 나온 것이다. 아버지는 알레에게 그 책을 직접 주기도 한다. 영화는 알레와 알렉스의 이별기를 그리긴 그린다. 그런데 그게 영화 속 영화인지, 실제 이 영화의 얘기인지,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영화 밖인지 안인지를 왔다 갔다 한다. 영화 주인공 알레의 직업은 영화감독이다. 알렉스는 배우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이 모든 이야기가 알레가 현재 찍고 있는 영화 속 영화의 얘기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알레는 알렉스와 길에서 헤어지는 장면을 찍어 1차 편집하기도 한다. 편집기사는 알레에게 저 장면이 너무 길다며 좀 자르자고 한다. 근데 그건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영화의 오프닝 장면을 볼 때 느꼈던 점이다. 앞의 암전이 너무 길다. '좀 자르는 게 어땠을까', '음악을 좀 깔지 그랬어'라는 느낌을 ‘반복’시켜 준다.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의 영화 &lt;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gt;.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의 영화 &lt;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gt;.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남자 주인공 알렉스가 하는 말 역시 오랜 연인이자 감독인 알레가 그에게 연습시키고 있는 영화 속 영화의 대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알렉스가 오디션용 카메라를 테스트할 때 알레는 카메라 뒤에서 그의 상대역 대사를 한다. 알렉스의 대사는 이런 것이다. “너하고 더 사귀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 난 네게 필요한 걸 못 주는 것 같아. 삶 자체가 부담스러워. 널 떠나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겠어.” 알레는 그의 대사를 고쳐준다. 대사의 톤을 조정해 주고 가르쳐 준다. 그리고 알레는 시나리오의 여자 대사를 한다. “그러면 행복하지 않아?” 알렉스가 다시 대사한다. “응. 넌?” 이윽고 알레의 대사. “행복해. 난 너의 모든 것이 좋아.” 이쯤 되면 알레와 알렉스가 카메라를 놓고 연기 연습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이별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인지 헷갈려진다. 이별 스토리가 이 영화의 진짜 얘기인지, 그런 남녀의 얘기를 찍는 영화 속 영화인지가 더욱 불분명해진다. 더 나아가 영화가 진짜로 현실을 그려낼 수 있는지 아니면 모든 것이 다 비현실적 판타지일 뿐이라는 것인지 생각은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윽고 다시 카벨의 이론으로 돌아오게 된다. “영화는 우리를 개선할 수 있는가”.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의 영화 &lt;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gt;.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애써 지키려 하는 테마, 곧 사랑하는 두 남녀의 헤어짐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키르케고르의 충고를 활용한다. 진정한 사랑은 반복이며 그것이야말로 행복한 안정을 준다는 식이다. '연인들이여, 사랑을 지루해하지 말라. 믿고 반복하라'고 얘기한다. 알레와 알렉스는 헤어지기로 했고 결국 이별 파티를 하지만 섹스를 나눈다. 둘은 키르케고르의 말을 지킨다. 반복의 사랑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것도 영화 속 진짜 얘기일까, 영화 속 영화의 가짜 얘기일까.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의 영화 &lt;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gt;.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는 현실과 영화, 진짜와 허구의 사이, 그 틈을 비집고 다니며 삶이 얼마나 풍부한지, 그것을 그리려는 영화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려 애쓴다. 영화가 그릴 수 있는 표현의 한계란, 오히려 드러낼 때, 거꾸로 그 수사(修辭)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음을, 그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인지와 인식이 크게 열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사람은 영화처럼 살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으며 그건 단지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영화 같은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이 세상사이자 인간사이다. 현실의 비현실성이며 비현실의 현실성이다. 이 영화는 현실을 그려 나가거나 비현실을 그려 나가려 한 작품이 아니고 현실과 비현실의 간극을 포착하려 한 영화이다. 이 영화가 독특한 이유이고 그래서 칸 감독주간이 발탁한 이유이다.

이 영화는 인생도, 연애도, 영화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여 준다. 인생도, 연애도 다시 시작하려면 변해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된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영화가 다시 시작되려면 형식과 내용이 바뀌어야 한다. 형식은 내용을 규정하고 내용 역시 형식을 규정한다. 어느 한쪽이 바뀌면 다른 한쪽이 바뀐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는 영화의 형식을 바꾸려는 요즘 유럽 영화계의 신조류를 대변한다. 영화의 서사가 꼭 전통적 서술구조일 필요가 없으며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이야기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유럽 영화계가 끊임없이 새로운 어법의 영화들을 내놓고 있다. 스페인 호나스 트루에바도 그중 한 명의 대열에 오른 셈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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