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폰기의 세 미술관이 그려낸 '아트 트라이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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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미술관의 세계 ②]1부 ▶ 고흐 '해바라기'부터 모네 '수련'까지...共樂 정신이 깃든 미술도시 도쿄
기업인들이 만든 미술관 & 가볼 만한 미술관들 2부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
150년 전 미술관 벨트가 형성되기 시작한 일본 도쿄 우에노. 전통으로 승부하지만 어쩐지 낡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에노의 대항마로 등장한 롯폰기는 세련미를 지향한다. 롯폰기 미술 중흥 프로젝트의 주역은 이 지역 미술관 세 곳을 꼭짓점으로 잇는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이다. 높이 238m 모리타워 최상층에 자리 잡아 ‘하늘과 가장 가까운 미술관’으로 유명한 모리미술관, ‘소장품 없는’ 그랜드급 전시관을 자랑하는 국립신미술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생활 속 미’를 추구하는 산토리미술관이 주인공이다.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은 한 미술관을 관람한 뒤 티켓을 제시하면 다른 두 미술관 입장료를 깎아주는 ‘아토로 할인’ 등으로 서로 끈끈한 연대를 모색한다.
지상은 시시하다는 듯 모리미술관은 하늘로, 하늘로 올라간다. 이 미술관은 일본 부동산 개발회사 모리빌딩이 재개발한 롯폰기힐스의 핵심 빌딩 ‘모리타워’ 53층에 있다. 모리 미노루 모리빌딩 회장은 롯폰기힐스 구상 초기부터 ‘문화 도심’을 목표로 정하고 2003년 도쿄 어디에서나 보이는 모리타워 최상층에 미술관을 개관했다. 회화, 사진, 드로잉, 조각, 영상, 설치 등 컬렉션만 480점에 달한다.
모리미술관에 올라가기 전 예고편을 보듯 지상에서도 아트를 체험할 수 있다. 모리타워 앞마당엔 낯익은 거대한 거미가 알을 품고 있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스페인 구겐하임미술관, 프랑스 퐁피두센터, 영국 테이트모던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도 있는 대형 거미 조각이다. 프랑스 출신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이다. 마망 옆에는 8m에 달하는 장미꽃 한 송이가 관람객을 굽어본다. 조각과 공간, 환경이 맺는 관계에 주목하는 독일 작가 이자 겐츠켄의 ‘장미’다.
2007년 4월 도쿄도지사 선거에 괴짜 후보가 나타났다. 월급을 1엔만 받겠다는 공약을 내건 구로카와 기쇼 공생신당 대표다. 그의 도전은 2.9%라는 낮은 득표율로 끝났고 그는 그해 10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당 이름으로 지은 ‘공생’은 사실 건축가였던 구로카와 기쇼(1934~2007)의 건축 이념이었다.
그해 1월 개관한 국립신미술관은 구로카와의 유작이다. ‘숲속 미술관’을 콘셉트로 설계한 이 미술관 전면은 파도처럼 물결치는 유리 커튼월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원뿔형 출입구와 함께 독특한 외관을 연출한다. 일본에서도 미술관 설계로 유명한 건축가 구로카의 공생을 테마로 지어졌다.
‘생활 속의 미’ 산토리미술관
일본을 대표하는 위스키 ‘히비키’로 유명한 산토리는 1899년 창립 이후 창업자 도리이 신지로의 ‘이익 삼분주의’를 경영 철학으로 삼아왔다. 사업으로 얻은 것은 재투자할 뿐만 아니라 고객 서비스, 사회 환원으로 나눠야 한다는 의미다. 2대 사장 사지 게이조는 일본 고도 성장기에 “마음의 풍요로움이 중요하다”며 문화 활동을 적극 추진했다. 이는 1961년 산토리미술관 개관으로 이어졌다. 마루노우치에 문을 연 산토리미술관은 1975년 아카사카로, 2007년 3월 미드타운(롯폰기)으로 옮기며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을 완성했다.
기업 미술관이 보통 설립자 취향대로 작품을 수집·전시하는 것과 달리 산토리미술관은 처음부터 위원회를 만들어 ‘생활 속 미’라는 기본 이념에 맞는 컬렉션을 갖춰왔다. 소장품은 회화, 도자기, 칠공예 등 일본 고미술부터 동서양 유리 작품까지 3000점에 달한다. 국보 1점, 중요문화재 16점도 갖고 있다. 연간 6회가량 기획전을 개최하는데, 매년 방문객 약 30만 명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산토리미술관은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구마의 목표는 ‘도시의 거실’ 같은 편안한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전통과 현대 간 융합을 기조로 도쿄라는 시끄러운 도시 속 조용한 거실이 되길 바라며 설계도를 그렸다. 외관은 백자 재질로 만든 세로 격자를 덮어 모던한 감각과 전통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뽐낸다. 실내는 나무와 일본 전통 종이를 사용해 자연의 따뜻함과 부드러운 빛을 표현했다. 바닥재는 일본을 대표하는 양조회사답게 위스키를 숙성하는 오크통을 재활용했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일본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존재가 ‘일왕’이다. 일본에서 왕은 ‘통치하지 않는 인간 신’이다. 그런 그가 사는 곳이 도쿄 고쿄(황거)다. 일본 최초 국립미술관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그 고쿄 바로 옆에 있다.
1952년 개관한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19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일본 근현대 미술품을 수집하는 동시에 다양한 전시회를 열어 미술의 가치를 세계인과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회화, 판화, 수채, 소묘, 조각, 사진, 영상 등 1만4000점에 달하는 소장품을 갖고 연 5회가량 전시마다 약 200점을 전시한다. 요로즈 데쓰고로의 ‘나체 미인’, 기시다 류세이의 ‘레이코 초상’, 고가 하루에의 ‘바다’, 아이 미쓰의 ‘눈이 있는 풍경’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도쿄도현대미술관이 하루아침에 수천 점을 소장하게 된 것은 아니다. 소장품의 약 절반은 1926년 개관한 도쿄도미술관에서 가져왔다. 일본 동시대 미술 발표의 장이었던 도쿄도미술관은 전시회 등으로 형성한 약 3000점을 도쿄도현대미술관에 물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