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그린 상상 속 미래…뉴욕 아트위크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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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 작가 김아영, 韓 첫 'LG구겐하임 어워드' 수상
'AI 베이비시터' 예술가
AI와 대화하며 스토리 수정
신기술 빠르게 받아들였던
축적의 시간이 수상 이어져
궁금한 점은 발로 뛰며 해결
코로나19 때 배달 라이더 등
현장 직접 체험하며 영감 얻고
'딜러버리 댄서의 구' 만들어
청담 아뜰리에 에르메스서
父 중동 파견 개인사 담은
'플롯, 블롭, 플롭' 전시 중
8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제3회 ‘LG구겐하임 어워드’ 시상식에서 주최 측이 첫 한국인 수상자를 호명하며 내린 평가다. 최근 3년간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예술가, 첨단 기술로 순수 예술계를 뒤흔든 주인공은 김아영 작가(47)다. 나오미 벡위스 구겐하임 수석큐레이터는 “김 작가의 작품은 디지털 시대의 시간과 인간의 경험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고, 현대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는 이야기꾼이다. 가장 현실적이면서 가장 비현실적 것들을 뒤섞는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도구는 지금도 무한히 확장 중이다. 영상, VR, 텍스트, 퍼포먼스, 게임 시뮬레이션, 인공지능(AI)까지 그야말로 한계가 없다. 서울 태생으로 한국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 다소 늦은 나이인 20대 후반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사진과 순수 미술을 공부하고 30대가 돼서야 지금의 세계를 하나씩 엮어나가기 시작했다.
AI와 협업하는 디지털 이야기꾼
김 작가와의 대화는 지난달 21일 서울 작업실에서 시작해 이달 구겐하임미술관으로 이어졌다. ‘디지털 아티스트,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그가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곳은 1968년 지어진,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인 종로 낙원아파트. ‘미래는 역사에 답이 있다’는 말을 증명하듯 김 작가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공간에서 7년째 새로운 미래를 써내려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소설을 정말 좋아했어요. 웹소설에도 빠져 있죠. 마음 한쪽엔 소설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저는 영상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르면 일단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요. 소설가의 상상력과 비슷하지만 시각화해야 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이나 기술적인) 제약이 존재하는 게 다른 부분 아닐까요.”
AI와 한몸처럼 살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AI베이비시터’라고 말한다. 일부 작품은 시나리오를 완전히 완성하지 않고 AI와 실시간 대화하며 스토리를 바꿔나갔다.
“AI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엄청난 것이 아니라 유년기에 있기 때문에 많은 부분 열어놓고 협업하게 됐어요. AI가 어떻게 해야 내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고 행동할지 그 과정을 같이 학습해 나가는 과정이 늘 새롭고 또 즐겁습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미디어아트 작가
그는 최근 몇 년간 베네치아, 아시안아트, 광주 등 주요 비엔날레를 통해 가장 주목받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2023년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아트 어워드 ‘프리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최고상인 골든니카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이번 LG구겐하임어워드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기술을 활용해 창의성 영역에서 혁신을 이끈 수상자에게 수여되는 만큼 예술계뿐만 아니라 산업계에서도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먼 과거와 아주 가까운 일상 속에서 뼈대를 찾아 줄거리의 꽃을 피우는 집요한 학구파다. “다가올 일만큼이나 지나간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고대 신화, 역사 리서치 등을 적극 파고든다. 거기엔 현실세계의 문제의식도 녹아 있다. 소외된 여성 퀴어문화, 신식민주의에서 억압된 것들, 산업화와 AI 시대에 달라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까지 방대한 서사를 가진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영감 얻기도
김 작가에게 미래는 과거와 화해하기 위한 장치다. 책상머리나 작업실에 앉아있는 게 아니다. 현장을 찾아가 부딪치고 경험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가상의 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한 픽션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음식 배달 앱을 거의 매일 사용한 경험에서 출발했다. 여성 베테랑 라이더를 만나 뒷좌석에 탄 채 서울 곳곳을 누비며 GPS 정보를 수집해 ‘유령 노동자’로 불리는 그들의 삶을 파헤쳤다.
“분명 한때 절대적이던 최신 기술이 근대 이후 사멸한 것에 관심이 많아요. 만약 여전히 공존한다면 어떤 식으로 발전했을까 인터뷰도 하고, 상상도 하죠. 1차 리서치를 마치면 궁금한 것들을 잔뜩 안고 과외받는 기분으로 사람들을 무작정 찾아가곤 합니다. 최근엔 쿠팡 물류센터가 너무 궁금해서 포장 작업하는 분을 만나봤어요. 하루 4~5시간 일하면서 500개까지 포장하는데, 기계와 자신이 한몸이 돼서 율동처럼 느껴지면 도파민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세계가 물류로 다 연결돼 있는데,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지점이 궁금했어요.”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
잊혀가는 것들을 가장 미래적인 이미지로 만드는 그의 작업은 지금 서울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되는 28분짜리 영상 작품인 ‘플롯, 블롭, 플롭’은 어린 시절 중동에 파견 간 아버지와 얽힌 개인사가 바탕이다. 당시 한양건설이 수주한 프로젝트는 사우디 최초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중 하나인 리야드의 알마터 주택단지. 한국 교민 사이에선 ‘한양아파트’로 불렸고, 걸프전 때는 쿠웨이트 난민들의 피란처가 되면서 ‘쿠웨이트 아파트’가 됐다.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 중산층이 사는 아파트로 변모했다.
석유가 매개한 역사, 아파트 도면이 시사하는 중의성, 그 장소가 교차하는 모든 기억을 아우른다. 가족 앨범 사진과 실사 촬영 영상, 걸프전 관련 신문과 자료가 생성형 AI와 게임 엔진 애니메이션과 만난다.
뉴욕=김보라 기자 destinybr@www5s.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