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사동 가로수길 말고 ‘신사동 클래식 코스’ 어때요?
입력
수정
[arte] 뚜벅이 클덕 권혜린의 작은 공연장 탐방기"그동안 이름만 들어보다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저도 이곳에 처음 와봤는데,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멋진 공연장이 있다니 깜짝 놀랐어요. 클래식 기타 공연에 최적화된 규모와 컨디션이라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습니다."
'도심 한복판의 멋진 공연장'
서울 신사동의 '거암아트홀'
지난 4월 19일, 무대에서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Lágrima와 Adelita를 연주하고 난 박규희 기타리스트가 옆에 놓여있던 마이크를 들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꺼낸 첫마디에는 공간에 대한 만족감이 묻어났다. 연주자의 기대와 설렘이 담겨 있어서였는지 이날의 연주는 무척 아름다웠고 클래식 기타 특유의 서정성을 만끽하는데도 더없이 좋았다. 나를 포함한,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의 마음도 아마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날 박규희 기타리스트가 '도심 한복판의 멋진 공연장'이라 칭한 곳은 바로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거암아트홀이다.
거암아트홀에 갈 때는 커피를 한 잔 사 들고 조금 일찍 가기를 추천한다. 쾌적한 분위기의 로비에는 널찍하고 편한 의자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큰 창이 있어서 공연이 시작되기 전 그날의 프로그램을 훑어보며 여유를 즐기기 좋기 때문이다.
거암아트홀은 144석의 아담한 규모로 객석의 단차가 꽤 높아서 뒤쪽에 앉아도 시야가 충분히 좋다. 객석이 무대를 향해 길게 뻗은 형태라 무대에 집중이 잘 된다는 장점도 있다. 벽과 바닥이 나무로 마감된 이곳은 무엇보다 음향이 좋아서 공연을 볼 때마다 늘 만족스러운데, 박규희 기타리스트의 공연에서도 거의 맨 뒷줄에 앉았지만 손끝에서 튕겨지는 기타 줄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고 소리의 울림도 아름다웠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비롯한 타레가의 곡들은 어쩜 그렇게도 이국적이면서 아름다운지, 클래식 기타를 잘 몰라도 듣는 이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다. 반면에 빌라로부스의 기타를 위한 프렐류드와 에튀드는 기타의 다양한 테크닉을 만끽할 수 있는 현대적인 작품이었다.
박규희 기타리스트는 연주 중간에 기타의 특징과 주법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는데, 기타는 현악기이면서 타악기도 되고 소리와 울림의 색깔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주를 들으니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일찍이 베토벤도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다'라고 했다는데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거암아트홀에서는 올해도 기획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거암 클래식 시리즈'에서는 5월에 박재홍 피아니스트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이현정 바이올리니스트 리사이틀이 열리고 11월에는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의 2025 서울바흐축제-실내악 시리즈가 열린다. 9월과 10월에는 '거암 보컬 시리즈'를 통해 테너 최원휘의 해설로 바리톤 김기훈,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테너 손지훈을 만날 수 있다. 또 '거암 신사담 시리즈'에서는 기타리스트 박규희의 리사이틀에 이어 7월에는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의 무대가 예정되어 있으니 한 번쯤 '도심 한복판의 멋진 공연장'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내가 1차로 거암아트홀에서 공연을 보고 2차로 풍월당에 들렀던 어느 토요일 오후엔 손님이 뜸해 매장을 가득 채운 조성진의 '라벨 피아노 독주곡'을 마음껏 감상하며 책을 고를 수 있었다. (압구정로데오 거리에 이런 공간이 무려 2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나 같은 클덕에게는 정말 소중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매장에 계시던 직원분께서 따뜻한 커피까지 한 잔 내어주셨고 덕분에 나도 잠시 테이블에 앉아 고른 책을 읽으며 ‘클래식 망중한’을 즐길 수 있었으니 참으로 따뜻하고 행복한 저녁이었다.
권혜린 칼럼니스트